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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군것질거리 삼천포 쥐포

요리 이야기/식재료3

by 그린체 2016. 11. 9.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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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포 쥐포 대한민국 대표 군것질거리 쥐포는 남녀노소 다 좋아하는 대한민국의 대표 간식이다. 쥐포의 최대 생산지는 삼천포이다.<br>아름다운 남해 바다를 안고 있는 포구이다. 삼천포 봄바다에는 쥐포 냄새도 난다.   


쥐포는 쥐치포가 바른말이다. 쥐칫과의 생선을 조미하여 말린 것이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쥐포라고 말한다. 쥐치포라 하면 오히려 어색하다.

삼천포는 행정명이 아니다. 한때 삼천포시였으나 1995년 사천군과 통합하여 사천시가 되었다.

그러나 자연지명으로는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사천은 몰라도 삼천포는 다 안다.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진다”는 옛말 ‘덕분’이다.

‘사천 쥐치포’라고 하지 않고 ‘삼천포 쥐포’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1 쥐포의 원료인 말쥐치이다. 머리의 '송곳'은 찔리면 무지 아프다.

2 남해로 이어지는 삼천포대교 위에서 찍은 것이다.방파제가 여럿 있는 큰 포구이다.
3 삼천포 어항의 아침 경매 풍경이다. 봄에는 낙지,멍게,해삼,보리새우 등이 주로 나온다.




일본에서 유래하였거나 국내에서 개발되었거나

우리나라 연근해에서 잡히는 쥐칫과 생선은 쥐치, 말쥐치, 객주리, 날개쥐치, 그물코쥐치 등이 있다.

모양은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질기고 까끄러운 껍질을 하고 있으며

입이 작고 머리에 ‘송곳’ 하나씩을 달고 있는 것은 다 같다.

머리가 크고 몸이 납작하여 살은 먹잘 것이 없다. 머리, 뼈, 내장, 껍질 빼면 살은 소량이다.

이 중에 쥐포로 흔히 말려지는 것은 말쥐치이다.

생산자들은 말쥐치가 가장 맛있어 그러는 것이라 하지만 말쥐치가 가장 많이 잡혀 그럴 것이다.

쥐치는 남해에 흔한 생선이었다. 다루기 어렵고 살도 많지 않으니 먹지 않았다. 그물에 걸리면 골치가 아팠다.

머리의 ‘송곳’이 그물에 끼이면 엉키기 때문이었다. 쥐치는 떼로 몰려다니는데 큰 무리가 걸리면

그물을 버려야 할 지경이 되어, 어부들은 긴 막대기로 쥐치들을 몰아내는 게 일이었다고 한다.

국내에서 쥐치를 포 떠서 말려 먹게 된 것은 1960년대부터의 일이라고 한다.

삼천포 쥐치포 생산자 영어조합법인의 설민우 사무국장은 “수산물검사소 출신의 강봉희(작고)라는 분이

일본에서 쥐포를 보고 와 1960년대 말에 이를 가공하여 일본에 수출한 것이

한국 쥐포 역사의 시작이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생선을 조미하여 말리는 방법은 일제시대부터 있어온 것이고, 삼천포에는 ‘화어’()라는 이름으로

그 흔적이 전하고 있어 쥐포의 역사를 일제시대까지 끌어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

화어’는 새우, 학꽁치, 달강어, 붉은메기(나막스) 등을 머리와 뼈를 제거한 후

꼬리가 붙어 있는 상태로 조미하여 건조한 어포이다.

꼬리에 노란색과 빨간색 물을 들여 꽃처럼 보인다 하여 화어란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1935년부터 대를 이어 화어를 가공하고 있는 신선수산의 김득주 씨는 “삼천포에서 개발된 것으로

일본인들이 즐기던 음식”이라 주장했다. 삼천포에서는 화어를 사쿠라보시(さくらぼし)라고도 하는데,

일본의 말린 조미 어포 중에 사쿠라보시라고 하는 것들이 있어 일본에서 유래한 음식일 수도 있다.




쥐치가 돌아왔다

1970년대 쥐포는 대한민국의 주요 간식으로 등장하였다. 삼천포는 쥐포를 만들어 전국에 공급하기에 바빴다.

골칫거리였던 쥐치가 주요 어종으로 떠올랐다. 한때 삼천포에는 100여 개의 업체에서 쥐포를 생산하였다.

일본 수출도 활발하였고 국내 수요도 급성장하였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갑자기 쥐치 어획량이 급감하였다.

남획의 결과였는지 생태계의 변화 때문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원료가 없으니 문 닫는 공장이 속출하였다.

베트남과 일본, 중국에서 원료를 수입하여 가공하였으나 단가가 올라가니 일본 수출 길은 막히고 말았다.

현재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쥐포도 수입이다. 원료를 수입하여 국내에서 가공한 것이 있고 아예

완제품으로 들여온 것도 있는데 포장에서는 그 표시가 정확하지 않다.

삼천포에는 2010년 현재 30여 곳의 쥐포 가공공장이 운영되고 있다.

2009년 겨울, 쥐치가 돌아왔다. 쥐치는 겨울에서 봄 사이에 주로 잡히는데

2010년 3월 현재까지 쥐치는 1980년대의 어획 수준을 보이고 있다.

쥐치는 주로 부산 공판장에 부려지고 삼천포 사람들이 이를 구입하여 가공하고 있다.

20여 년만의 대풍어에도 삼천포 사람들은 표정이 밝지가 않다. 원료 가격은 떨어졌지만 인건비 등

고정비가 많이 들어 쥐포의 가격을 낮추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저가의 수입 쥐포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수작업의 한계와 맛내기의 어려움

쥐포의 가공은대부분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할머니들이 쪼그리고 앉아 칼로 일일이 쥐치의 껍질을 벗기고 살을 바르는 일을 한다.

이를 기계화하는 작업이 진행된 적이 있는데 머리를 잘라 기계에 넣어야 하는 여분의 수작업이 따르고

꼬리의 살이 잘려나가 수율이 떨어지는 등 수작업에 비해 효율이 적어 기계는 버려졌다.

포를 뜬 쥐치의 살은 설탕과 소금, 조미료 등으로 버무린 후 여러 조각을 붙이는 공정을 거쳐 건조실로 향한다.

예전에는 햇볕 건조를 하였으나 날씨에 따라 제품의 질이 들쭉날쭉하여 요즘은 기계건조를 한다.

쥐포 생산자들은 건조온도를 섭씨 25도 이하로 두면 자연건조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쥐포에는 화학조미료 등 첨가물이 들어간다. 또 설탕 등 당의 함량이 높다. 이에 따른 소비자 불만이 높은 식품이다.

쥐포 가공업체 사람들은 “설탕은 말랑말랑한 질감을 오래가게 하고 방부효과가 있으며,

화학조미료를 넣어야 소비자가 맛있다 하니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이들은 첨가물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여

그 대안을 찾고 있지만 자력으로 연구하여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주문자가 첨가물을 빼 달라면 그렇게 생산을 하지만 주문량이 많지 않아 대량 생산에는 한계가 있다.

쥐치가 돌아왔다고 하니 제대로 된 쥐포의 생산도 가능해져 대한민국의 대표 간식으로서

삼천포 쥐포가 꾸준히 인기를 누릴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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