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은 곡물에 엿기름(맥아)을 더하여 당화한 엿물을 졸인 것이다.
수분이 많으면 물엿(조청), 이를 더 졸여 다소 딱딱하게 굳히면 갱엿,
갱엿을 켜서 하얗게 만들면 흰엿, 또 이 흰엿을 길게 늘이면 가래엿이라 한다.
사카린이나 설탕이 우리 땅에 들어오기 이전 엿은 단맛을 내는 중요한 음식재료였다.
그래서 집집이 엿을 고았다. 장을 담글 때처럼 특별히 날을 잡아 엿을 고았는데,
음력 12월 서일(쥐날)이 그날이다.
곧 다가올 설에 엿을 쓰는 일이 많으니 이때에 맞춘 것으로 보인다.
근대화 이후 사카린과 설탕, 산당화엿이 대량생산되면서 엿은 사라졌다.
특히 일제는, 가양주를 금지하였듯이, 엿도 만들지 못하게 하였다.
엿의 주재료가 쌀, 옥수수, 수수 등 곡식이었기 때문이다.
또 값싼 사카린이 등장한 것도 엿이 사라진 이유가 되었으며,
일제에 의한 설 풍속의 축소도 엿 고는 일을 줄였을 것으로 보인다.
1 황골엿은 부드러워 당기면 길게 늘어난다. 쌀에 옥수수가 조금 들어간 엿이다.
2 곡물을 갈고 엿기름과 물을 더해 끓이고 있다. 달콤하며 식혜 냄새가 난다.
3 황골은 치악산 국립공원 입구에 있는 마을이다. 곳곳에 엿 파는 집들이 있다.
가정에서의 엿은 일찌감치 사라졌지만 군것질거리로서의 엿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엿장수 덕이다.
조선시대 단원 김홍도의 씨름 풍속화에도 엿판을 목에 건 엿장수가 나온다.
이 목판 엿장수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엿을 팔았다.
현금을 받고 팔았다. 시골에서는 현금 대신 곡식을 받기도 했는데, 목판 밑에 곡식 담을 광주리를 매달고 다녔다.
장에는 좌판 엿장수도 있었다. 이 시절 엿장수들은 커다란 엿가위로 소리를 내었으며, 이 소리에 노래를 실었다.
이를 엿단쇠소리라 한다. 경남 김해 지방의 엿단쇠소리 일부이다.
강원도 금강산/일만하고도 이천봉/돌 많아 구암자/십구세야 나는/우리 딸이 만들어신/울릉도라 호박엿/
둥기둥기 찹쌀엿/떡 벌어졌구나 나발엿/허리가 잘쑥 장구엿/올곳볼곳 대추엿/네모야 반듯 수침엿/
이것저것 떨어진 것/운동화 백켤레 밑 떨어진 것도 좋고/신랑각시 첫날밤에/오줌 누다가 요강 빵구 난 것도 쓴다…."
리어카가 등장하자 엿장수는 고물수집상이 되었다. 리어카란 '대규모' 이동수단이 엿 판매대금을 현금이나
곡물 대신 고물로 바꾸어놓은 것이다. 엿장수가 수집한 고물은 고물상에게 넘겨졌으며,
고물상은 엿장수에게 엿을 대주었다.
1980년대에 들어 고물 수집이 돈이 되지 않자 고물상과 엿장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덩달아 엿 공장도 사라졌다.
엿장수가 사라졌어도 엿은 살아남을 수가 있었다. 맛있었으면 구멍가게, 제과점 등등에서 팔렸을 것이다.
그러나 엿 맛은 어느 틈엔가 바뀌어 있었고, 소비자들도 이를 알아차리고 더 이상 엿을 맛있어하지 않았다.
엿은 단맛만 나는 것이 아니다.
구수한 전분의 향과 겨 냄새 같은 맥아의 향이 숨어 있다. 계속 먹어도 질리지 않으며 속도 쓰리지 않는다.
한데, 많은 엿이 이 기대를 배반한다. 가래엿 하나만 먹어도 질리고 만다.
입안에서 물렁물렁 녹아야 하는 엿이 사탕처럼 딱딱하다. 엿 만드는 방법이 바뀌어 그런 것이다.
엿의 재료는 전분이다. 이 전분을 당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에는 크게 나누어 두 종류가 있다.
효소를 넣거나 산을 넣는 방법이다. 전통적인 엿은 효소로 엿기름을 쓴다.
쌀, 옥수수 등 곡물에다 엿기름을 넣고 전분을 삭힌 후 고면 엿이 된다. 이를 두루 맥아엿이라 하는데,
같은 맥아엿이라 하여도 만드는 방식에 따른 맛 차이가 크다. 공장의 맥아엿은 차치하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들었다 하여도 엿 기술자에 따라 공정이 조금씩 달라 그 맛이 실로 다양하다.
요즘, 솜씨 있는 기술자의 엿이 참 귀하다. 이보다, 엿 맛을 버리게 된 결정적인 것은 산당화엿이다.
효소 대신 산을 쓴 엿이다. 전분을 염산이나 황산으로 가수분해하면 포도당이 되는데,
전분이 전부 포도당으로 변하기 전에 시간을 조절하여 만든다.
산당화엿은 달기만 하고 부드러움이 없다. 사탕보다 못한 맛이다.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흥양3리의 마을을 황골이라 한다. 치악산 서쪽 사면에 있는 조그만 산골이다.
이 마을에 엿 고는 집들이 여럿 있다. 이 마을의 엿을 흔히 황골엿이라 한다.
마을 어른들의 말에 의하면 황골엿은 일제시대 이전부터 유명하였으며, 서울 경동시장의 한약재시장에서
황골엿은 다른 엿의 두 배 가격으로 팔렸다고 한다. 황골은 논밭이 적다.
엿 골 곡물은커녕 먹고 살 곡물도 넉넉지 않았을 동네이다. 산골이라 땔감은 쉽게 구할 수 있다.
오래 전부터 생계 유지를 위해 곡물을 외부에서 가져와 엿으로 가공하는 일을 업으로 삼았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예전 황골엿은 옥수수로 만들었다고 하나 요즘 엿은 주로 쌀엿이다.
맛이 옥수수보다 쌀이 나아 바뀐 것이라 한다. 옥수수엿은 쓴맛이 있다.
옥수수엿은 이 쓴맛을 줄이기 위해 분쇄한 옥수수알을 흐르는 물에 사흘 정도 담가두어야 하는데,
그 긴 공정 시간으로 인해 쌀엿으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 쌀은 물에 불려 바로 쓸 수 있다.
황골엿은 물에 불린 곡물을 갈아서 엿기름과 물을 더하여 가마솥에서 2시간 정도 끓이는 공정이 처음이다.
이를 애기죽 끓인다고 한다. 이 공정이 황골엿의 가장 큰 특징이다.
타지역의 엿은 보통 곡물을 쪄서 엿기름과 물을 더하고 따뜻한 곳에서 삭힌다.
애기죽은 1시간 정도 식혔다가 '허리질금'(중간에 넣는 엿기름)을 넣고 4시간 가량 그대로 둔다.
애기죽을 다시 1시간쯤 끓인 후 엿물을 짜고, 이 엿물을 4시간 이상 졸여 엿을 얻는다.
졸이는 시간에 따라 물엿, 갱엿이 된다. 쌀을 불리는 시간부터 따지면 24시간 이상 걸리는 공정이다.
황골엿은 가래엿을 만들지 않는다. 갱엿으로도 충분히 부드러워 굳이 가래엿을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엿도 부드러운 단맛을 내어 조림 음식을 만들 때 쓸 만하다. 황골엿, 또 전통 엿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방에서 쓰는 물엿에 맥아엿과 산당화엿 두 종류가 있으며 그 맛 차이가 크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대체로 투명한 것이 산당화엿이고 갈색이 도는 것이 맥아엿이다. 그러나 갈색이라 하더라도 다 맥아엿인 것은 아니다.
인쇄된 글을 자세히 보면 '맥아엿 50%' 등의 글귀를 볼 수 있다.
멸치조림을 했을 경우 시간이 지나면 맥아엿은 갓 요리한 듯 부드럽고 산당화엿은 멸치가 바삭바삭 부서진다
글·사진/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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