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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맞는 봄의맛 남해 시금치

요리 이야기/식재료3

by 그린체 2016. 12. 24.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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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시금치 겨울에 맞는 봄의 맛 시금치는 겨울 막바지에 들어야 달디달아진다. 사철 나오기는 하지만 제철이 있는 것이다.<br>최근에 남해의 시금치가 맛있다고 떴다.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자란 시금치이다.

시금치는 이른 봄에 먹는 채소였다.

가을에 순이 돋고 겨우내 겨우겨우 살아가다가 땅이 녹고 봄바람이 살랑 불 때에야 먹을 수 있는 크기가 된다.

그러다, 재배기술과 품종개발 덕에 사철 시금치를 먹게 되었다.

비닐하우스 등 시설에서 재배하여 가을에 일찍 거두기도 하고 봄이 지나서도 거둔다. 고랭지에서는 여름에도 재배한다.

제철이 아닌 시금치이니 가격이 좋아 이런 재배법이 크게 번졌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사철 먹게 되는 시금치 맛에 뭔가 비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시금치 맛은 단맛이 큰 특징인데 그 단맛이 오간 데가 없이 그냥 풀내만 나는 시금치에 만족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하여 다시 등장한 것이 겨울 시금치이다. 경북 포항, 전남 신안, 경남 남해 등지의 겨울 노지 시금치이다.

이들 시금치는 각각 포항초, 섬초, 남해초 등 지역의 이름을 달고 있다.



  

뽀빠이와 시금치

시금치의 원산지는 아프카니스탄 주변의 중앙아시아이다.

7세기경에 중국 등 아시아 지역으로, 11∼16세기에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우리 땅에는 조선 초기에 전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생으로 먹는 것이 일반적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살짝 데쳐서 나물로 먹는다.

시금치는 우리 민족에게 아주 친숙한 채소이다.

차례상에 '가채()'로 오르고 한국의 대표 음식인 비빔밥, 김밥 등에도 반드시 들어간다.

서민의 상차림에는 콩나물 옆에 이 시금치나물이 오르지 않으면 서운할 지경이다.

시금치가 일상의 식단에 크게 번진 데에는 철분이 많아 아이들의 성장발육에 도움이 된다는 '소문'이 일정 역할을 하였다.

밥상 위 시금치나물에는 우리 아이가 만화영화 주인공 뽀빠이처럼 시금치 먹고 튼튼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금치의 철분 '신화'는 1870년 독일의 한 과학자가 시금치의 영양성분 중 철분에 대해 소수점을 한 칸 뒤에

잘못 찍는 바람에 생겨난 일이었다. 수십 년 후 이 수치는 바로잡혔지만 일상에 퍼진 '시금치 철분 신화'는

뽀빠이와 함께 아직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잘못된 정보도 크게 번지면 바로잡기 어려운 것이다.




1 입자루가 붉은 시금치가 반드시 재배종인 것은 아니다. 붉은 개량종도 많다.
2 경남 남해군은 섬이다. 겨우내 따스하고 눈을 보기도 어렵다. 겨울 시금치 재배 적지이다.
3 시금치는 대부분 소규모 농가에서 재배한다. 한나절 거두고 한나절 포장하여 다음날 경매에 낸다




포항초, 섬초, 남해초

겨울 시금치를 전국적인 브랜드로 만든 최초의 지역은 포항이다.

1980년대에 포항초라는 이름이 생겼다.

처음에는 재래종의 시금치였으나 요즘은 개량종을 주로 심는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신안의 섬초가 소비지에서 인기를 끌었다.

역시 지역의 재래종으로 시작하여 요즘은 개량종도 제법 심고 있다.

최근 10여 년 사이에는 남해의 남해초가 제법 크게 알려지고 있다.

재래종도 있으나 역시 개량종을 주로 심는다.

이 세 지역의 시금치는 포항의 일부 비닐하우스 재배 시금치 빼고는 다 노지의 시금치이다.

시장에 나오는 시기도 10월 말에서 3월 말까지로 비슷하다.

재배 환경도 '바다 옆의 밭'이라는 특징에서 비슷하다.

맛도 그닥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니 이 캐스트의 제목을 '남해 시금치'라 하였지만

포항초나 섬초와 큰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또, 남해 옆의 경남 고성 해안가에서도 시금치 재배를 많이 한다.



재래종이 밀리는 이유

재래종이 귀해지고 개량종이 늘고 있는 것은, 첫째는 재배 기간 때문이다.

재래종은 파종 후 90일 정도 자라야 먹을 만한 크기가 된다. 가을에 심으면 이른 봄에나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개량종은 40일 정도만 거둘 수 있다. 또, 재래종은 크기가 작아 단위면적당 수확량이 적다.

개량종의 한 품종인 '무스탕'과 비교하면 포기당 무게가 서너 배는 차이가 난다.

농가에서는 이 재래종과 개량종을 적절히 배합하여 심는다. 일찍 거두는 것은 개량종을, 늦게 거두는 것은 재래종을 심는 식이다.

그래서 한 밭에 여러 품종의 시금치가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한다. 재래종의 재배 장점도 있다.

재래종은 씨앗을 직접 받아서 파종을 한다. 종자 값이 안 드는 것이다. 개량종은 해마다 종묘회사에서 종자를 사야 한다.

개량종은 자가채종을 하여서는 시금치가 잘 나오지 않는 것이다. 개량종 중에서는 일본에서 유래한 것이 많은데,

시금치에서조차 '입맛의 식민'이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설탕 뿌린 것 같은 단맛

남해의 시금치 농사는 대면적이 드물다.

대부분 늙은 농부 한두 명이 생계를 위해 유지하는 손바닥만한 논밭에서 시금치를 키운다.

오전에는 시금치를 거두고 오후에는 이를 다듬어 단을 묶는다.

다음날 아침에 지역 농협의 공판장에 가지고 나가 산지경매를 한다.

농협에서 수거하여 가락시장 등 대도시 도매시장에 내어 경매를 부치는 일반의 농산물

거래와는 조금 다른 방식이다. 상인이 산지로 내려와 사간다고 보면 된다.

농민 입장에서는 시세를 바로 알 수 있고 상인들에게 다른 지역의 작황과 가격 정보를 들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농민들을 만나면서 어떤 품종의 시금치가 맛있는지 내내 물었는데, 답은 항상 같았다.

품종보다는 언제 나는 것인가가 중요하다. 1월 말부터는 어떤 품종이든 설탕 뿌린 것같이 달다." 과연 그랬다.






글·사진/ 황교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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