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제천여행] 울고넘는 박달재와 목각공원

여행,사진방/여행후기1

by 그린체 2013. 5. 3. 14:52

본문

 


박달도령과 금봉낭자의 사랑이야기

울고넘는 박달재

 

 

 

 

박달재는 충북 제천시 봉양읍 원박리와 백운면 평동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천등산 박달재라고도 하며 울고넘는 박달재로 유명한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천등산지등산이 연이은 마루라는 뜻에서 이등령으로 불리기도 했다.

해발 453m, 길이 500m. 예로부터 제천에서 서울에 이르는 관행길이 나 있으나,

첩첩산중으로 크고 작은 연봉이 4면을 에워싸고 있어 험준한 계곡을 이룬다.
이곳은 1217년(
고려 고종 4) 7월 거란군이 10만 대군으로 침공해 왔을 때 김취려 장군이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전공을 세운 전승지로 유명하다.

또한 인근의 지등산·인등산과 함께 천(天)·지(地)·인(人)을 모두 갖춘 신령스런 곳으로,

단군이 하늘에 제사 지내던 성소로 알려져 있다.

 

 


 

 

박달재고개에 목각공원이 만들어져 있는 안내도이다

 

 

충청북도 제천시의 서쪽에 있는 고개로

박달치, 박달령, 박달산(500m)이라고 전한다

 

 

  

 

박달재 노래비


 

1948년에 박달도령과 금봉이 처녀의 애틋한 사연을 담은

울고넘는 박달재 (반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가 발표되어 오랫동안 애창되고 있다.

 제천시 국도변의 박달재휴게소 입구에는

노래 가사를 적어 넣은 박달재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박달재 고개마루에는 멋진 석상들의 작품들이 있다

 

 

 

 

 

 

솟대와 반지 모형의 조각들이 인상적이다

 

 

 

 

 

 

과거를 보러간 박달도령은 공부는 안하고

금봉이 생각만 하고 시를 짓는데 

 


 

난간을 스치는 봄바람은 이슬을 맺는데
  구름을 보면 고운 옷이 보이고 꽃을 보면 아름다운 얼굴이 된다.
  만약 천등산 꼭대기서 보지 못하면 달 밝은 밤 평동으로 만나러 간다.

 

 

 

 

 

 

 

이 일대에 박달나무가 많이 자생하므로 박달재라고도 하고,

이 근처에서 죽었다는 박달이라는 청년의 이름을 따서

박달재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산에는 잣나무와 전나무, 향나무, 육송 등의 상록수가 울창하며,

도로가 구비돌아 9곡(曲)의 유서 깊은 박달재로 유명하다.

지금은 공원으로 만들어 놓아서 휴게소도 있고 솟대들이

길손들의 안녕을 빌어주는 것 같다

 

 

 

 

 

고갯마루애 박달재 휴게소가 있어서

한번 쉬었다가 공원 구경하고 갈라고 한다

 

  

 

 

 

목각공원에 들어서니 표지판이 알린다

 

 

목각은 나무에 서화를 새기거나

나무로 상(像)을 조각 함. 또는 그 조각한 물건을 말한다

 

 

 

 

 

목각공원으로 올라가는 돌게단 옆으로도

목각 형상들이 줄지어 서있다

 

  

 

 

 

박달도령과 금봉이가 만나는 형상

 

 

 

 

 

두손모아 기도하는 형상

얼마나 간절하면 두손이 하늘높이 길게 뻗어있는 모습이

간절함을 기원하는 느낌이든다

 

 

 

 

 

 

금봉낭자가 박달도령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형상

목이 쭈욱 늘어나게 기다린다는 뜻

 

 

 

 

 

 

 

울고넘는 박달재의 유래

 박달도령과 금봉이 처녀의 애틋한 사연이 구전으로 전해온다.

옛날 경상도 청년 박달도령이 서울로 과거보러 가는 길에 이 고개를 넘어

아랫마을 금봉이 처녀를 만나 사랑을 나눴는데,

 박달은 과거급제하면 돌아와서 금봉이와 백년가약을 맺겠다고 언약하고 상경하고,

금봉이는 도토리묵을 장만하여 낭군이 될 박달도령 허리춤에 매달아주고 먼길에 요기하도록 배려했다.

낙방한 박달이 슬픔에 잠긴 채 돌아오다가 평동 금봉이 집을 찾았는데

금봉이가 박달을 기다리다 지쳐 3일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식음을 전폐하면서 슬피 울었다고 한다.

그 때 마침 박달은 고갯마루 방향을 바라보니

 꿈에 그리던 금봉이가 춤을 추면서 고개 쪽으로 가는 것을 보았고,

있는 힘을 다해 박달은 고개 쪽으로 달려가 금봉이를 잡으려고 했으나 손이 미치지 못하였다.

박달은 간신히 고개 위에서 금봉이를 끌어안았으나 금봉이는 이내 사라지고

박달은 허공으로 몸을 날려 천길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박달은 금봉이의 환상을 보고 낭떠러지에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그 후로는 이 고개를 박달재라고 한다.

 

 

 

 

 

 

장승들의 목각도 있고

 

 

 

 

 

 

십이지상 목각들도 서있다

 

 

 

 

 

 

부부와 아이의 한가족의 형상도 있고

 

 

 

 

 

나무목각에 동전들도 눈에 띈다

 

 

 

 

 

 

 

나무는 조각가의 기량과 솜씨가 가장 정교하고 극명하게 나타나는 재료이어서

한국에서도 고대로부터 목조기술이 크게 발달하였다.

박달재의 목각들도 보고가는 이들에게 반가움을 선사한다

 

 

 

 

 

 

입구에는 남근석도 재미있게 놓여있다

 

 

 

 

 

박달재의 천년목찰 목굴암이 있다

 

 

 

 

 

 

큰나무속에 있는 금동 부처님상이 신비롭다

번쩍번쩍하는 금동이 눈부시게 아름다운데 혼자서 엎드려서

겨우 들어가서 만나는 부처님 상에

석가탄신일을 맞이하여 나의 소원도 빌어본다

 

 

 

 

 

 

박달재 천년목찰 오백나한전을 본다

 

 


오백나한전은 불교에서 아라한과를 성취한 500명의 아라한이다

오백비구(五百比丘)·오백상수(五百上首)라고도 한다.

 아라한과는 소승불교에서 아라한이 이른 최고의 경지로서,

 이를 깨달은 이들은 더 이상 생사윤회의 흐름에 태어나지 않으므로

최고의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하며 매우 덕이 높은 성자로 추앙받는다.

 

 아라한은 범어 아르한(arhan)의 음역으로 보통 줄여 나한(羅漢)이라고 한다.

아라한을 응공이라고 하는데, 이는 공양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 존경 받을 만한 사람을 의미한다.

이외 살적. 불생, 응진, 진인, 성자 등으로 의역한다.

 

 

 

 

 

부처님의 조각조각 하나가 예술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누구든지 일심으로 공부해서 나한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나한 역시 여러 불보살처럼 신통력을 갖춘 존재로 받들어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

보살과 다른 점은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나한들은 대개 실존인물이라는 것이다.

 

 

 

 

 

 

오백나한이란 석가 생존시의 500명의 제자나 석가의 열반 후

결집한 500명의 나한이나 비구 등을 칭하는 데 두루 사용됨을 알 수 있다.

이들 오백나한은 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서 특별한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에는 대부분의 사찰에서 나한전(羅漢殿) 또는 응진전(應眞殿)이라는 전각에

조상(彫像)을 만들어 나한을 모시고 있다.

영천 은혜사 거조암의 석조 오백나한상은 유명하다.

 

 

 

 

  

 

박달재 고개위에 또하나의 사찰이 있다

장군상을 모시는 신당 같기도 한 아리송한 사찰이다

 

 

 

 

 

솟대와 장승들도 보이고

 

 

 

 

 

 

 

 

 

 

박달은 밝달을 한자로 옮긴 백산(白山) 혹은 백 뫼에서 유래된 것으로,

음독 중심의 이두식 지명이다.

제천 제원사에 의하면, 지명의 유래와 관련하여 박달과 금봉의 전설이 전해진다.

꼬마 신선 박달과 꼬마 선녀 금봉은 현재 제천시를 상징하는 캐릭터이다.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