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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만든 음식 의정부 부대찌개

요리 이야기/식재료3

by 그린체 2016. 10. 6.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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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부대찌개 전쟁이 만든 음식 부대찌개는 '미군부대에서 나온 고기로 끓인 찌개'라는 뜻이다.<br>한반도에 미국의 군인이 주둔하게 된 것은 1945년 해방과 함께였다.<br>본격적인 대규모 주둔은 한국전쟁 발발 이후이다. 격동의 그 세월에 만들어진 음식이다.

한국전쟁을 일부 역사학자는 통일전쟁이라 표현한다. 그 정의대로이면, 한국전쟁은 실패한 통일전쟁이다.

그 전쟁으로 한반도 주민들이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자들은 총칼에 죽었고 여자와 아이들은 굶주렸다.

폐허가 된 산하에는 남북을 가르는 휴전선만 남았다. 결과로 보자면, 분단 고착화 전쟁이었다.

한반도 남쪽에는 미국의 군인이 주둔하였다. 미군은 음식을 미국에서 공수하여 먹었고,

그 음식이 일부 군대 밖으로 흘러나왔다. 미국인의 음식 재료였는데, 한국인은 이를 미국인처럼 먹지 않았다.

한반도 주민들의 오랜 전통음식 스타일인 '탕'에 이를 넣었다. 그리고 이름을 부대찌개라 하였다.




의정부 부대찌개라고 하여 다른 지역의 것과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김치에 소시지, 햄, '민치' 등이 들어간다.


  


꿀꿀이죽과는 다르다

부대찌개는 미군부대에서 나온 음식물 쓰레기로 끓였던 꿀꿀이죽에서 비롯하였다고 흔히 말한다.

부대찌개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음식이고 같은 탕 스타일의 음식이니 그렇게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은 다른 음식이다. 이런 오해는 꿀꿀이죽이 그 이름만 남고 실체가 사라져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1964년 경향신문에 꿀꿀이죽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다. 기사 제목은 ‘허기진 군상’이며,

드럼통에 담긴 꿀꿀이죽을 사가는 사람들의 사진도 올라 있다. 기자는 이렇게 썼다.

먹는 것이 죄일 수는 없다. 먹는 것이 죄라면 삶은 천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돼지먹이로 사람이 연명을 한다면

식욕의 본능을 욕하기에 앞서 삶을 저주해야 옳단 말인가?” 기자는 덧붙인다.

담배꽁초, 휴지(무엇에 썼는지도 모름) 등 별의 별 물건이 마구 섞여 형언할 수 없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이 반액체를 갈구해야만 하는 이 대열! 그들은 돼지의 피가 섞여서가 아니다.

우리의 핏줄이요 가난한 이웃일 따름이다.” 이름만 꿀꿀이죽인 것이 아니라 실제 돼지먹이를 사람이 먹었던 것이다.

꿀꿀이죽의 재료가 된 음식물 쓰레기는 여러 군데에서 나온 것일 터인데, 미군부대에서 나온 것도 있었을 것이다.

미군을 그때는 유엔군이라 불러 이 꿀꿀이죽은 유엔꿀꿀이죽이라고 불렀다.

분명한 것은, 꿀꿀이죽은 부대찌개와는 많이 다른 음식이라는 것이다.

1960년대 말 경제사정이 조금씩 나아지자 미군부대의 음식물 쓰레기에서 먹을만한 것만 골라 탕을 끓였는데,

이를 유엔탕이라 하였다. 남대문시장 가판에 이 탕을 파는 노점이 줄지어 있었다.

그러나 이 역시 지금의 부대찌개와는 달랐을 것이다. 뚝배기나 양푼에 1인분씩 담아 팔았는데,

우거지 같은 푸성귀에 고기나 햄, 소시지 조각을 넣고 끓인 탕에 식은 밥 한 덩이 또는

국수를 말아 내는 음식이었을 것이다. 어떻든 이 음식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라졌다.



김치찌개의 한 종류이다

부대찌개의 조리법을 보면, 누군가 창안을 한 음식은 아니다. 김치찌개에 소시지나 햄을 더한 것일 뿐이다.

김치를 넣지 않는 부대찌개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의 부대찌개는 김치와 함께 끓이므로

여러 종류의 김치찌개, 즉 돼지고기김치찌개, 꽁치김치찌개, 참치김치찌개, 멸치김치찌개,

고등어김치찌개와 한 계통에 있는 음식이라 할 수 있다.따라서 부대찌개는

소시지와 햄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지역에서 먹기 시작한 음식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은 서울, 부산, 인천, 원주, 춘천, 동두천, 오산, 파주, 평택, 성남, 수원,

의정부, 진해 등등 한반도 곳곳에 주둔하였다. 그 여러 미군 주둔지에서 소시지와 햄이 흘러나왔을 것이고,

따라서 부대찌개, 즉 소시지햄김치찌개는 한반도 여기저기서 끓여 먹었을 것이다.


부대찌개는, 적어도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다.

신김치의 개운한 산미와 칼칼한 매운맛에 햄·소시지의 단맛과 짠맛이 보태어져

심심한 밥과 함께 먹기 좋은 음식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부대찌개가 크게 번질 수 없었다.

미군부대에서 몰래 나오는 햄과 소시지의 양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애는 한국산 햄과 소시지는 꿈도 못 꿀 정도로 축산 기반이 허약하였다.

1967년에 예쁜 분홍색의 소시지가 시판되었는데, 모양과 냄새만 소시지 비슷하였지

그 내용물은 생선살과 전분이 대부분이었다. 이 분홍의 소시지로 찌개를 끓이면 풀어져버린다.

1980년대 중반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간, 그러니까 미군부대의 것과 같은 햄, 소시지가 국내 기업에서도 생산되었다.

이 햄과 소시지는 찌개를 끓일 수 있는 것이었다. 1990년대에 들면서 부대찌개는 외식시장에서 ‘폭발’을 하였다.

그때에는 벌써 한국전쟁은 먼 옛날의 사건처럼 느껴졌고 '꿀꿀이죽에서 유래하였다'는 스토리에서

고통의 세월을 심각하게 떠올리는 사람은 없었다.




제일시장에서는 햄, 소시지, '민치' 등 부대찌개의 재료를 흔히 부대고기라 한다.

찌개를 끓이고도 이를 부대고기라 하는 어른들도 있다

제일시장 상가 지하 식당의 부대찌개이다. 개방형으로 아주 작은 식당들이 닥지닥지 붙어 있다.

메뉴판에 없어도 부대찌개 달라면 준다.




이제는 부대찌개가 아니다 

경기도 의정부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의 도시'가 되었다.

서울의 북쪽 바로 위에 있으면서 북으로 동두천, 포천, 연천, 철원으로 이어지는

방어선의 중요 지점이기 때문이다. 왼쪽으로는 파주 너머 한강, 임진강과 연결되어 있다.

미군은 의정부에 대규모의 기지를 두었는데,

특히 전방에 있는 미군부대의 보급 기지로 운영을 하였다. 보급 철로가 놓이고 창고도 섰다.

따라서 여느 지역에 비해 뒤로 빠져나오는 미군 물자가 풍부하였다.

이 미군 물자를 받아 소화하는 시장으로 제일시장이 큰 몫을 하였다.

제일시장은 한국전쟁 이후 형성되었는데, 한때는 미군부대의 온갖 물자를 파는 곳으로 유명하였다.

의정부는 미군부대와 제일시장이 먹여 살린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제일시장에서 팔리는 미군부대 물자 중에 햄과 소시지는 당연히 있었을 것이고, 따라서 시장 안의 식당에서

이를 사다 음식을 만들어 팔았을 것이다. 볶기도 하고 끓이기도 하고 졸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제일시장 상가 지하에는 오래된 식당들이 몇 있는데, 긴 목록의 메뉴판에 적힌 음식 외에도

손님이 원하면 어떤 것이든 요리를 해준다. 식당의 할머니들은 소시지, 햄, '민치'

(간 고기의 일본말. mince에서 온 것이다) 등을 부대고기라 부른다.

또, 찌개를 하여도 부대고기, 볶아도 부대고기라 말한다.

이 시장에서 7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30여 부대찌개 전문식당이 모여 있는 골목이 있다.

1960년대부터 부대찌개 식당이 있었으며 1990년대에 '타운'이 형성되었다.

제일시장의 부대고기가 확장되어 지금에 이르렀을 것이다.

의정부의 미군부대는 2016년까지 다른 곳으로 이전을 하게 된다.

2012년 현재 8곳의 기지 중 5곳이 그 자리를 비웠다.

제일시장에는 더 이상 미군부대에서 몰래 빼오는 물건은 없다.

소시지, 햄 등도 정상적으로 수입된 것이 팔린다. 의정부 부대찌개도 그 재료가

미국 것이라 하여도 수입된 것으로 끓여낸다.

부대찌개는 더 이상 '미군부대에서 나온 고기로 끓인 찌개'가 아닌 것이다.

그래도 이를 먹을 때면 언제나 한국전쟁과 미군, 그리고 가난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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