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양도성 둘러보기
2012년 제6차 역사학자와 함께하는 서울문화유산 찾아가기
한양도성을 찾아가는 일정으로 많이 걷기도 하고
가는 도중 도중마다 김용호 연구원과 궁예를 연구하는 교수님과 함께
설명도 들으면서 더운날에 많이도 걸었지요
동대문(흥인지문)은 서울시 종로구 종로6가 69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문이다
보물 제1호이고 1934년 일본이 동대문(東大門)으로 문화재 지정을 했으나
1996년 역사 바로세우기 사업의 하나로 일제가 지정한 문화재에 대한
재평가작업을 하면서 '흥인지문'으로 명칭을 환원했다.
1396년(태조 5) 창건되어 1453년(단종 1)에 수리되었고
임진왜란으로 불탄 것을 1869년(고종 6)에 새로 세웠다.
앞면 5칸, 옆면 2칸의 2층 성문으로 국보 제1호인 숭례문과 비교하면
전체 모습과 규모는 비슷하되 화려함에 비해 웅장한 느낌은 덜하한 느낌이다
오늘 우리 일행에게 소상히 한양도성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실 분들이다
우리 일행은 동대문에서 모여서 설명을 듣고
걸어서 서울 한양도성을 찾아가는 길의 여정이다
동대문에서 걷다보니 제일먼저 나온 곳이
동대문 성곽공원 팻말이다
그 앞을 지나서 낙산공원족으로 간다
낙산공원 입구가 나왔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동(東崇洞) 낙산에 있는 근린공원으로
수도 서울을 구성하는 내사산인 북악산, 남산, 인왕산, 낙산의 하나이자 주산(主山)인
북악산의 좌청룡(左靑龍)에 해당하는 낙산의 자연환경과 역사적 문화환경을 복원함으로써
서울시민들에게 쾌적한 공원 경관을 제공하고,
자연 탐방을 통해 역사와 문화 교육의 장을 제공할 목적으로 조성되었다.
낙산공원입구에서 부터 성곽을 따라서 걷는다
그옛날 네모진 돌에 글을 새겨서 표지를 만들었나보다
돌에 새겨진 글을 보면서 역사의 흔적을 읽는다
성곽을 따라서 걷는길에 피어있는 꽃들이 화려함을 부른다
한양도성은 조선시대에 서울을 둘러쌌던 도성이다.
태조 4년(1395)부터 약 3년에 걸쳐 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의 능선을 따라
석성과 토성으로 성곽을 쌓았고
세종 4년(1422)에 대대적으로 고쳐짓는 등 여러 차례 수리를 하였다.
둘러쌓여있는 돌성곽 사이로 나있는 문을 들러간다
성에는 사대문(동:흥인지문, 서:돈의문, 남:숭례문, 북:숙정문)과
사소문(북동:홍화문, 남동:광희문, 북서:창의문, 남서:소덕문)을 두었는데,
흥인지문만은 옹성을 쌓았고 숙정문은 암문은 성곽의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게 만든 비밀 출입구로 하여 문루를 세우지 않았다.
현재는 삼청동 ·성북동 ·장충동 일대에 성벽이 남아 있다.
이화마루 텃밭이 있는데 서울시에서 대여해서 경작을 한다고 한다
도시텃밭에 각자의 이름을 써서 놓았다
서울 성곽을 따라서 걸으며 가는 중에 설명을 듣고
더운날이라서 걷기도 많이 힘들었다
서울 성곽에 대한 이야기
서울 한양도성은 사적 제10호로 조선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이듬해
1395년에 도성수축도감을 설치하고 1396년 1월9일 부터 2월28일 까지
49일간 그리고 8월6일부터 9월24일 까지 49일간 총 98일간의 농한기를 이용하여
각 지방의 백성을 동원하여 건축되었다
동대문에서 부터 시작하여 낙산공원에 있는 성곽길을 걷는다
이곳은 낙산성곽 서쪽길이다
총무당으로 내려가는 계단족이다
삼군부 총무당은 조선 말기의 군사기관이었던 삼군부의 중심 건물이다.
조선 중기에 변방의 군사문제를 합의·처리하기 위해 설치한
비변사가 임진왜란 이후 국가정책 수립의 최고 합의기관으로 그 세력이 비대해지자,
이를 막고 의정부의 기능을 확대·강화하기 위해 고종 2년(1865) 비변사를 의정부에 통합시켰다.
이때 조선 초에 정부와 군부를 분립한다는 원칙 아래 설치되었던 의흥삼군부가
흥선대원군에 의해 훈국의 신영과 남영 그리고 마병소가 합해져서 다시 설치되었다.
삼군부의 임무는 군무를 통솔하고 숙위문제를 총괄하는 동시에
변방에 관한 일체의 사항까지도 관장하는 것이었다.
삼군부가 완전한 조직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867년이었다.
삼군부는 훈련도감·어영청·총융청·금위영·용호영 등 5개 군문을 비롯하여 전국의 군사권을 장악하고
병인양요ㆍ신미양요 때에 위세를 떨쳤다가,
개항 이후인 고종 17년(1880년)에 통리기무아문이 설치되면서 폐지되었다.
조선 초기 삼군부는 광화문 앞 서쪽인 지금의 정부종합청사 자리에,
의정부는 동쪽에 위치하여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삼군부가 다시 세워지면서 원래 삼군부 자리에 있던 예조는 한성부 자리로,
한성부는 훈국의 신영자리로 옮겼다
원불교 서울 최초 신축교당터라는 팻말이 있다
성곽을 따라서 걷는길에 힘들면 앉아서 쉬어가고
또 걷는 등 우리 일행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이길을 따라서 걷고있었다
여기서 시작했는지 시(始) 자도 보이고
서울 성곽은 조선시대 성 쌓는 기술의 변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며,
조상들이 나라를 지키려는 호국정신이 깃든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혜화문이 있는 곳으로 내려 가는 길이다
서울성곽길을 따라 걸으면 서울 4대문안 조선의 역사와 서울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서울 600년 탄생의 모습은 성곽 안의 한양이다.
서울성곽을 통해 조선의 한양과 21세기 빌딩과
아파트로 둘러싸인 한국의 서울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또 성곽 밖 도시 소시민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아직 개발의 물결이 닿지 않아 살아있는 골목길,
그 골목길을 따라 이어진 산동네 작은집과 고층빌딩의 심란한 동거를 바라 볼 수 있다.
빌딩숲을 벗어나 한적한 서울 성곽길에 올라 서울의 탄생과 팽창, 현재의 서울을 조망해보자.
성곽길을 따라 걷다보면 성곽의 역사, 조선의 이야기뿐 아니라
성곽길 굽이굽이 현대사의 굴곡, 개발의 문제까지 함께 보며 걷게 된다.
1397년(태조 5) 도성을 에워싸는 성곽을 쌓을 때
도성의 북동방에 설치한 문(門)인 혜화문이 보인다
동소문(東小門)이라고도 한다.
도성에는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이 설치되었는데,
이 문은 동문과 북문 사이에 세워졌다.
처음에는 문 이름을 홍화문이라 하였다가
1483년(성종 4) 새로 창건한 창경궁의 동문을 홍화라고 정함에 따라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1511년(중종 6) 혜화로 고쳤다.
1684년(숙종 10) 문루를 새로 지은 후 한말까지 보존되어 오다가
1928년 문루가 퇴락하였으므로 이를 헐어버리고 홍예만 남겨 두었는데,
일제는 혜화동과 돈암동 사이의 전차길을 내면서 이마저 헐어버려
그 형태도 찾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당시 북문(북대문)은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이 문은 양주·포천 방면으로 통하는 중요한 출입구 구실을 하였다.
1975년부터 시작되어 1980년에 완공된 서울성곽의 일부로 1992년에 복원하였다.
쌓아놓은 돌의 모양에 따라서 시대가 구분된다
최순우 옛집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2동에 있는 고고미술학자이자 미술평론가였던
혜곡(兮谷) 최순우(1916~1984)가 살았던 옛집으로
2006년 9월 19일 등록문화재 제268호로 지정되었다.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서 소유, 관리하는 국민성금 1호집이기도 하다
시민의 힘으로 만든 문화재이다
2002년 주변의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시민 기금으로 보존의 가치가 있는 땅이나 문화재를 구입하는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을 통하여 지켜낸 소중한 공간이다.
조선시대 말기 가옥인 이곳은 화려함보다는 담백한 아름다움으로
부드러운 한국의 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은 구석구석 해곡 선생의 정성이 담겨 있다.
재치와 여유가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있고
뒤뜰에 덩그러니 자리 잡은 항아리는 장독의 모습으로 남아있고
절구통과 검저고무신이 인상적이다
옛집은 1930년대에 지은 전통 한옥으로 전형적인 경기지방 한옥 양식이다.
'ㄱ자형' 본채와 'ㄴ자형' 사랑채, 행랑채가 마주 보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ㅁ자형' 구조를 이룬다.
가운데에는 중정이 있고 중정 옆에는 작은 우물이 남아 있다.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한국미의 발견에 힘쓴 최순우가
1976년부터 1984년 사망하기까지 살았던 주택으로,
밀리언셀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등을 집필한 곳이다.
가는길에 간송미술관이 있는데 지금은 개방이 되지않아 겉만 구경하고 왔다
주로 5월과 10월, 봄·가을에 한 번씩 특별전이 열릴 때 한시적으로 개방한다.
간송미술관은 간송 전형필 선생이 일제 때 우리 문화재가 일본으로 반출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평생의 사업으로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수집한 것을 모은 곳이다.
소장하고 있는 유물 목록은 사설로는 국내 최고라 꼽을 만하다.
훈민정음의 원본을 비롯해, 고려청자를 소개할 때면 빠지지 않는 청자상감운학매병,
고려시대 만들어진 금동삼존불감 등 국보급 문화재만도 10여 점이 넘는다.
매번 주제를 바꿔가며 열리는 특별전은 전시 내용과 전시물에 관한 한
최고의 기획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훌륭한 전시회이다.
문의 02-762-0442
홍살문이 있는 이곳도 문이 닫혀 있었다
상허 이태준 가옥은 월북 작가 이태준이 1933년에 지어 '수연산방'이란 당호를 짓고,
1933년부터 1946년까지 거주하면서 단편으로는 달밤, 돌다리,
장편으로는 황진이, 왕자호동 등 문학작품 집필에 전념한 곳이었다
이 집은 1933년에 지어진 개량한옥으로 대지 약 120평, 건평 약 23.2평이다.
서남향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별채 없이 사랑채와 안채를 결합한 본채로만 이루어져 있다.
일각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장독대가 보이고
좌측에는 야외 테이블, 오두막이 있고 우측에는 본채가 있다.
본채 앞 작은 마당에는 우물이 있다.
본채는 전면부는 팔작지붕이고 후면부는 맞배지붕이며, ㄱ자형 구조이다.
중앙 2간을 대청으로 하고 대청의 남쪽에는 한 칸 크기의 안방을,
안방 앞에는 작은 한 칸 크기의 누마루가 있으며, 뒤에는 칸 반 크기의 부엌이 있다.
대청의 북쪽에는 한 칸 크기의 건넌방이 있고, 대청과 건넌방 앞에 툇마루가 있으며,
건넌방 뒤에는 한 칸 크기의 뒷방이 있다
서울특별시 성북구의 대표적인 명소로 1977년 서울시민속자료 제11호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이태준 선생의 외종손녀가
당호인 수연산방(壽硯山房)이라는 이름으로 전통찻집을 운영하고 있다.
수연산방으로 들어가는 대문도 운치가 있고 찻집에 손님도 많았다
담쟁이 덩쿨담 너머로 보이는 수연산방이라는 글시가 선명하게 보인다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심우장(尋牛莊)이란 명칭은 선종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열 가지 수행 단계중 하나인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尋牛)에서 유래한 것이다.
왼쪽에 걸린 현판은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서예가 오세창(1864~1953)이 쓴 것이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만해 한용운의 유택.
1985년 7월 5일 서울특별시기념물 제7호로 지정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만해(萬海) 한용운(1879~1944)이 지은 집으로
남향을 선호하는 한옥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북향집인데 독립운동가였던 그가
남향으로 터를 잡으면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게 되므로 이를 거부하고
반대편 산비탈의 북향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제에 저항하는 삶을 일관했던 한용운은 끝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4년 이곳에서 생애를 마쳤다.
한용운이 사용했던 방으로
작품으로는 상기 장편 외에 장편소설인 박명(薄命)이 있고,
저서로는 시집 님의 침묵을 비롯하여 조선불교유신론,십현담주해
불교대전, 불교와 고려제왕 등이 있으며 1973년 한용운전집 (6권)이 간행되었다.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장방형 평면에 팔작지붕을 올린 민도리 소로수장집으로
한용운이 쓰던 방에는 그의 글씨, 연구논문집, 옥중공판기록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일본 대사관저가 이 곳 건너편에 자리잡자 명륜동으로 이사를 하고
심우장은 만해의 사상연구소로 사용하였다.
한용운은 만해(萬海)라는 호(號) 외에 필명으로
오세인(五歲人), 성북학인(城北學人), 목부(牧夫), 실우(失牛) 등의 이름을 가끔 썼는데
목부란 ‘소를 키운다’는 뜻으로, 곧 내 마음 속의 소를 키움은
왕생의 길을 멈출 수 없음을 나타낸다 하겠다.
즉, 심우장이란 불교의 무상대도(無常大道)를 깨우치기 위해 공부하는 집,
공부하는 인생을 의미한 것이다. 1984년 지정되었고, 지금은 기념관으로 쓰고 있다.
교과서에도 실렸던 님의침묵의 시가 쓰여있다
만해 한용운의심우장에서 단체사진을 찍었고
역사학자와 함께하는 서울문화유산찾아가기 프로그램은 서울시에서
아주 잘한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오늘 서울한양도성을 따라서 성곽을 돌다보니 그옛날의 영화가
그려지는듯하고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서울 시사편찬위원회 http://culture.seou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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