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란 ‘살이 노란 명태’이다. 노랑태라고도 한다. 원래 황태는 함경도 원산의 특산물이었다.
겨울이면 원산 앞바다에서 명태가 많이 잡혔다. 강원도에서도 많이 잡혔다.
명태가 많이 나는 지역에서는 다들 밖에서 명태를 말렸다.
이렇게 말린 명태를 북어라 한다. 그런데 원산의 북어는 달랐다.
바싹 마르는 여느 북어와 달리 명태의 몸이 두툼하게 유지를 하면서 살이 노랗게 변했다.
밤이면 섭씨 영하 20도 아래의 추운 날씨에 꽁꽁 얼었다가 역시 영하권이지만 낮에는 햇볕을 받으니
살짝 녹으면서 물기를 증발시켜 독특한 북어가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원산 출신들이 강원도에서 이 황태를 재현하였다.
그 원산 황태와 가장 가까운 맛을 내는 지역이 인제군 북면 용대리이다.
1 용대리의 한 황태 덕장 풍경이다. 이런 대규모 덕장이 곳곳에 있다.
2 용대리 황태마을 입간판이다 ,황태 말리는 일이 하늘에 달렸으니 황태가 하늘을 보고 있다.
3 명태 거는 덕은 나무로 되어 있다. 명태가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용대리는 46번 국도를 타고 가다 보면 백담사 오르는 길 즈음부터 진부령과 미시령이
갈라지는 삼거리 바로 뒤쪽까지의 동네이다.
깊은 산의 골을 끼고 있는 마을이라 겨울이면 혹한에 휩싸인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 마을에 명태가 걸리게 된 것은 원산 출신의 김상용이라는 분의 덕이라고 한다.
그는 원산의 겨울 날씨와 가장 비슷한 지역을 찾다가 이 마을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때가 1960년 겨울이었다고 전한다.
황태를 말릴 수 있는 기후 조건은 의외로 까다롭다. 기본적으로 영하 15도 이하의 날씨가 두 달 이상 되어야 한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백담사 계곡 입구에도 덕장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날씨가 전반적으로 따뜻해지면서 그 위치에서는 황태가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황태 덕장들과는 지척인데도 이러니, 교통 사정도 좋지 않았을 당시를 생각하면
김상용씨의 황태 덕장 찾기 노고는 대단하였을 것이다.
덕에 명태를 거는 시기는 12월 중순이다. 그 즈음에 무조건 거는 것은 아니다.
영하 15도쯤 내려가야 하므로 기온이 맞지 않으면 뒤로 미룬다. 그러고 난 다음 녹았다 얼었다 하며 말라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겨울 날씨인 삼한사온이 반복되는 게 가장 좋다.
그러나 우리나라 겨울 날씨는 삼한사온을 잊은 지 오래다. 겨울이 따뜻하면 황태가 바싹 마르고 검은빛을 띠어 하품이 된다.
늦은 겨울에 비라도 오면 크게 망친다. 그래서 용대리 사람들은 황태 말리는 일을 하늘과 사람이 7 대 3제로 하는 동업이라고 말한다.
황태의 원료인 명태는 대부분 러시아산이다. 국내산 명태는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수입된 동태의 배를 따고 내장을 제거하는 일은 속초 등 동해안에서 한다.
배를 딴 명태는 다시 냉동을 하여 용대리로 가져와 덕에 건다.
19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내장을 제거한 명태를 덕장에서 물에 담갔다가 걸었다.
이물도 제거하고 모양을 잡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하려면 명태가 덕에 걸리자마자 꽁꽁 얼어야 하므로
작업할 때의 낮 기온이 적어도 영하 15도는 되어야 한다.
지금은 그 혹한 속의 물 작업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일의 절반은 덜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월쯤 태백산맥에서 봄바람이 불어오면 황태를 거둔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속살이 완전히 노랗지는 않다.
덕에서 걷은 황태는 머리 부분에 구멍을 뚫고 싸리로 꿰는 관태 작업을 하여 저장실로 들어간다.
이렇게 다시 3~4개월을 거치면 속살이 숙성되어제 색깔을 내며 구수한 맛도 더 있게 된다.
물론 숙성 전에도 맛있기는 매한가지이다.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용대리에는 덕장이 서너 곳밖에 없었다. 황태 수요도 극히 적었다.
1990년대 말에 들면서 황태 붐이 일었다. 도심 곳곳에 황태 전문점이 들어섰을 정도이다.
그 덕에 현재 용대리 주민들은 거의가 직간접적으로 황태 일과 연관을 두고 있다.
화전을 일구던 가난한 마을에서 국산 황태 생산량의 70%를 감당하는 ‘부자 마을’이 된 것이다.
황태일로 외지에 나갔던 젊은이들이 돌아와 마을에 활기가 돈다. 그러나 그 활기의 뒷면에는 불안감이 숨어 있다.
원료 공급이 안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동해에서 명태가 잡히기를 바라는 것은 서해에서 참다랑어가 잡히길 바라는 것보다 더 어려워졌다.
외국에서의 명태 수요가 늘면서 가격이 뛰고 있다. 이러다가는 원료조차 확보하지 못할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또 하나의 걱정은 중국산 황태의 대량 수입 문제이다. 용대리 황태의 원산지는 ‘러시아’로 표기될 수밖에 없다.
가공은 용대리에서 했어도 그 원료의 산지를 원산지로 표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수입한 황태도 원산지가 러시아인 것이 많다. 속임수 판매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뜻이다.
용대리에서 생산된 것이 확실한 황태를 맛볼 수 있는 방법은, 일단 용대리에 가서 먹거나 사는 수밖에 없다.
글·사진/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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