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柑橘)은 운향과 감귤나무아과 감귤속, 금감속, 탱자나무속의 과일을 총칭하는 단어이다.
그러니까 유자, 레몬, 자몽, 오렌지, 탱자 등등도 다 감귤이다.
귤은 감귤과 비슷한 뜻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제주의 그 감귤만을 지칭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밀감(蜜柑)이 제주의 그 감귤만을 지칭하는 단어로 흔히 쓰였으나
일본에서 미깡[蜜柑]이라 하여서인지 최근에는 잘 쓰지 않는다.
품종으로 따지자면 제주에서 흔히 심는 그 감귤은 온주귤(温州橘)이라 하는 것이 가장 맞을 것이다.
온주는 중국의 한 지역명인데 이 지역에서 그 감귤이 유래하였다고 여겨 붙인 것이다.
일본에서는 운수미깡(温州蜜柑), 중국에서는 웬추미간[温州蜜柑]이라 하지만 예부터
우리 민족은 '귤'이란 단어를 흔히 썼으므로 온주귤이 적당하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서는 언중이 널리 쓰는 말 그대로 감귤이라 한다.
1 겨울이라지만 제주의 햇살은 따스하다. 그 햇살로 감귤이 익는다.
2 가을 감귤 밭 풍경을 두고 귤림추색(橘林秋色)이라 한다.
귤나무 숲의 가을 색이란 뜻이다. 10월이면 감귤이 노랗다.
3 수확을 마친 감귤. 한 나무의 감귤도 숙기가 다르므로 두어 차례 거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감귤류는 우리 땅에 선사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감귤나무의 특성상 제주와 남부 해안지대에서 흔히 자랐을 것이다. 고려시대에 제주 감귤이 문헌에 등장하는데,
고려왕가에 제주 감귤이 공물로 바쳐졌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왕가에 의해 제주의 감귤이 관리되었다.
왕가에서 파견한 관리는 감귤나무의 수를 일일이 기록하였으며 그 수확물을 모두 거두어 한양으로 보냈다.
제주의 감귤은 귀하여 조선 왕가 식솔과 중앙관리들만 맛볼 수 있었다.
감귤을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 감귤이 제주에서 올라오면 이를 축하하기 위해 성균관과 사학(四學)의
유생들을 모아 시험을 보게 하고 이를 나누어주었다. 이 시험을 황감제(黃柑製)라 하였다.
조선의 왕가에서 감귤을 이리 귀하게 여겼으니 제주의 농민들은 감귤 수탈로 인하여 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
관리들은 초여름에 피는 감귤 꽃의 수를 세어두었다가 겨울에 그만큼의 감귤을 거두려고 하였고,
감귤이 많이 열린 해를 기준으로 해마다 똑같은 양의 감귤을 내놓아라 하였다.
농민들을 수탈에서 벗어나고자 감귤나무 뿌리에 뜨거운 물을 부어 고사시키기도 하였다.
1894년(고종 31년) 갑오개혁으로 공물제도가 없어지자 제주의 감귤나무는 버려졌다.
식량작물이 아니니 제주 농민들은 그 지긋지긋한 감귤나무를 보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때까지 제주에서 재배되었던 감귤은 동정귤, 금귤, 청귤, 병귤, 당유자, 진귤 등이었다.
이 재래의 감귤들은 상업적 가치가 없어 현재는 재배되지 않는다.
일제는 제주에 일본의 감귤을 이식하였다.
오렌지 등 여러 감귤류가 도입되었지만 주요 품종은 지금의 제주 감귤인 온주귤이었다.
그러나 일제시대에는 제주 감귤이 크게 번성하지 못하였다. 일본의 감귤 생산량이 상당하여
일본 감귤이 한반도에 수입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제시대 제주 농업 자체가 피폐해져 있었다.
수산업은 일찌감치 일본인들의 손에 들어갔으며 많은 농지가 토지조사사업 이후 농민에게서 박탈되었다.
수많은 제주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 제주 농업은 지탱될 수가 없었다.
또 일제시대 말기에는 제주 전체가 군사기지로 바뀌었다. 해방 이후에는 제주의 상황이 더 나빠졌다.
4‧3항쟁과 한국전쟁의 격랑에 제주는 난파선마냥 떠다녀야 했다. 전쟁이 끝나고 1950년대 말에 와서야
제주 사람들 눈에 감귤나무가 눈에 들기 시작하였다.
일본에서 수입되지 못하니 감귤은 조선시대 때만큼 귀한 과일이 되었다.
돈이 되니, 감귤나무가 순식간에 번졌다. 처음엔 제주에서 제일 따뜻한 서귀포 일대에서만 재배되었는데
재배 기술이 발달하면서 곧 제주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1960~70년대 감귤나무는 대학나무라 불릴 만큼 제주 농민들에게 큰돈을 벌어주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제주의 감귤은 과잉 생산과 외국 농산물 수입 등으로 예전만은 못하게 되었다.
제주는 온통 감귤 밭이다. 특히 제주의 남쪽인 서귀포 일대가 기후 조건이 좋아 감귤나무가 많다.
또 일반적으로 서귀포의 감귤이 맛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이한 것은, 제주의 동쪽은 감귤보다는 감자며 당근, 무 등의 재배가 흔하다.
이는 동서의 토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라산이 화산 활동을 할 때의 일이다.
제주는 서북풍이 부는 날이 많아 화산재가 동쪽에 잔뜩 쌓이게 되었다. 그래서 이 동쪽 지역의 땅은 검고
가벼운 흙(화산회토)으로 되어 있으며 이 땅은 과수보다는 뿌리채소 재배가 유리하다.
서쪽은 비화산회토로 땅의 색깔이 옅으며, 서귀포 일대는 동서의 중간에 있어
화산회토와 비화산회토가 섞여 있는 토양으로 짙은 갈색에 다소 가벼운 토양을 지니고 있다.
이 토양에 따라 감귤의 맛에 차이가 난다고 하는데,
대체로 비화산회토의 땅일수록 당도가 조금 높다고 한다.
토양 외에도 강수량과 일조량이 감귤 맛에 영향을 미치므로 제주 중 어느 지역의 감귤이 특히 맛있다
단정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과일이 그렇듯이, 나무를 어떻게 관리하였느냐에 따른 맛 차이가 더 클 수도 있다.
감귤은 대부분 80% 정도 익었을 때 수확을 한다. 수확과 유통의 편의를 위해서이다.
이 정도 익은 감귤은 막 따서 먹으면 신맛이 강하고 단맛이 부족하다.
신맛이 강한 감귤을 구입하였으면 갓 딴 감귤일 수 있으므로 며칠 상온에 두었다가 먹는 것이 낫다.
시중의 많은 감귤들이 왁스 코팅이 되어 유통된다. 반질반질 빛이 나며 손으로 만지면 매끈하다.
왁스로 코팅을 하는 이유는 유통 기간을 늘리기 위해서이다.
80% 정도 익은 것을 수확 후 다 익은 맛이 나게 하려면 닷새는 두어야 하는데
그 기간이면 벌써 시들해 보이니 왁스를 칠하여 수분 증발을 방지하는 것이다.
왁스로 코팅한 감귤은 감귤 전체나 껍질을 이용한 음식을 만들 수 없다.
피부에 좋다고 감귤 껍질을 손등에 비비는 것도 꺼려지게 한다.
농민과 상인은 왁스 코팅을 하지 않으면 때깔이 금방 안 좋아져 소비자들이 이를 사려고 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 100% 완숙을 하여 수확하면 될 것이고, 유통중에 겉이 마르는 것은 소비자에게 지속적으로 설명하면 될 것이다.
껍질이 말라도 맛의 변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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