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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씨앗 봉평 메밀

요리 이야기/식재료3

by 그린체 2016. 12. 1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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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평 메밀 꽃보다 씨앗 메밀꽃이 져야 메밀이 맺는다. 초가을 메밀꽃 필 때의 경관이 아름다워 이때에 맞춰 봉평을 찾지만<br>메밀 맛을 즐기려면 가을을 넘겨 가는 것이 맞다. 메밀국수는 겨울 음식이다.   


메밀은 한해살이 풀이다. 씨앗에 든 씨젖을 먹는, 식량작물이다.

씨앗을 뿌린 후 그 결실을 거두는 기간이 60∼80일로 여느 식량작물에 비해 짧다.

거친 땅에서도 잘 자라며 병과 벌레가 잘 붙지 않는다.

이런 장점 덕에 메밀은 우리 민족이 이 땅에서 수천 년을 버티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봄에 작물을 심었다가 자연재해로 거둘 것이 없을 지경이 되면 논밭을 갈아엎고 메밀을 심었다.

서리 내리기 전 70일 정도의 기간만 있으면 메밀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구황작물로서의 이미지 탓에 메밀은 강원도 산골의 가난한 농가에서나 먹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그 영양적 가치가 재조명되면서 건강 음식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1 가운데에 있는 것은 메밀의 겉껍데기를 제거한 것이다. 메밀쌀이라 한다.
2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방앗간 장면이다.

  이효석 문학의 숲'에 가면 소설 속의 여러 장면을 이런 식으로 연출해놓았다.
3 메밀의 꽃은 희고 줄기는 붉으며 잎은 녹색이다. 멀리서 보는 메밀꽃만 예쁜 것은 아니다.

  



국수는 메밀국수였다

메밀은 우리 땅에 삼국시대 이전부터 재배되었다.

딱딱한 겉껍데기를 제거하면 분말을 쉬 만들 수 있어 국수와 묵, 부침개 재료로 널리 쓰였다.

한반도는 밀 재배 적지가 아니라 밀 생산량은 극히 적었다. 그러니까, 한국전쟁 이후 미국에서

밀이 대량으로 들어오기 이전까지 메밀은 이 밀의 역할을 대신하였다고 할 수 있다.

남한에서는 메밀로 만드는 국수류는 평양냉면, 막국수라 하여 밀로 뽑은 국수와 구별하지만

북한에서는 아직도 메밀로 만드는 면 요리들을 그냥 국수라고 부른다.

메밀은 환경적응력이 뛰어나 한반도 전체에서 잘 자란다. 단위면적당 생산량을 보면 남부지방이 재배적지일 수 있다.

따라서 196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남부지방에서 많이 재배하였다.

근래 메밀의 주산지로 강원도가 굳어진 것은 경사지고 거친 산간지가 대부분인 강원도 땅에 재배할 만한

작물로 메밀 외 마땅한 것을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1970년대 들어 막국수, 메밀묵, 메밀부침개 등이

강원도의 향토음식으로 알려지면서 이 지역에서의 수요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봉평과 이효석, 그리고 메밀

봉평은 강원도 평창군에 있는 면 단위의 조그만 산골 마을이다. 우리는 메밀이라고 하면 으레 봉평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문학가 이효석 덕이다. 한국문학의 한 걸작으로 꼽히는 [메밀꽃 필 무렵]이 봉평을 배경으로 쓰였으며,

그가 태어난 곳도 봉평이다. [메밀꽃 필 무렵]은 오래 전부터 교과서에 실려 있어 온 국민이 그 소설을 읽었다고 볼 수 있는데,

소설 속의 메밀밭 풍경 묘사가 빼어나게 아름다워 온 국민이 봉평에 대해 '문학적 향수'를 지니고 있고,

그래서 메밀이라 하면 으레 봉평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애초 봉평에 메밀 농사가 특히 흔했던 것은 아니다.

여느 강원 산골과 마찬가지로 여러 작물들이 심어지는 농촌일 뿐이었다.

1975년 영동고속도로가 뚫리고 1980년대 마이카 붐이 일면서 봉평을 찾는 문학순례자들이 늘면서 사정은 급변하였다.

1990년대에 들면서 특별난 행사가 없음에도 메밀꽃이 필 무렵이면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모여들었다.

이 즈음에 봄에도 개화하는 메밀 품종이 보급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봉평의 논밭과 도로변이 온통 메밀꽃으로 장식되었다.

이는 경관 조성용으로서만 유용한 것이 아니다. 봉평산 메밀 수요가 급증하여 농가소득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현재 봉평의 메밀 가공 공장들은 봉평에서 생산되는 메밀로도 그 양이 부족하여 타지역의 메밀까지 매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메밀의 본디 맛

메밀 음식 중 가장 흔히 먹는 것이 막국수와 평양냉면, 그리고 일본식 소바이다.

그 면의 색깔은 대부분 거무스레하고, 소비자들은 이를 당연한 듯이 여긴다.

메밀에서 우리가 먹는 부위는 씨앗의 씨젖이다. 겉껍데기를 벗기면 씨젖이 나오는데, 이 색깔은 하얗다.

속껍질까지 분쇄를 하면 흐린 회색이 돌기는 하지만 메밀가루는 전반적으로 희다.

따라서 메밀로 뽑는 국수는 흰 것이 맞다. 예전에 분쇄기계가 좋지 않았던 시절에 메밀의

겉껍데기가 메밀가루에 섞이어 거무스레하였는데 지금은 기계가 좋아 겉껍데기 혼입은 없다.

그럼에도 지금의 막국수와 평양냉면, 소바 등의 면이 거무스레한 것은 겉껍데기까지 갈아 넣어 그런 것이다.

메밀 함량이 극히 떨어지는, 즉 밀가루 함량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부 메밀국수의 경우

그 색깔을 더하기 위해 색소며 곡물 태운 가루를 넣기도 한다. 메밀의 본디 맛은 하얀 씨젖의 맛에서 나온다.

메밀로 뽑은 국수는 거무스레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메밀은 찰기가 적어 20~30% 밀가루를 섞어 면을 뽑는 게 일반적인데, 이 정도여도 메밀의 향은 충분히 구수하고 곱다.

글·사진/ 황교익 | 맛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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