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은 인도와 말레이시아 등 열대 아시아가 원산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땅에는 고려시대에 중국을 통하여 들어온 것으로 보고 있다. 전북 완주군 봉동읍이 생강 주산지로 유명한데,
1300년 전에 신만석이라는 사람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생강을 얻어와 봉동에 심은 것이
우리나라 생강 재배의 시작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재래종 품종에는 '봉동재래'라는 명칭이 붙어 있다.
충남 서산은 일제시대에 봉동의 생강을 가져와 재배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산의 생강도 일제시대부터 심어와 그 땅에 토착화한 것은 '서산재래'라고 부른다.
서산 생강은 국내 생산량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1 생강을 거두고 있다. 절개지 사면에서 보듯 서산의 땅은 온통 황토이다.
2 막 거둔 생강이다. 때깔로 보아 수입 종자일 것이다. 시중에는 이런 생강이 대부분이다.
3 생강은 땅속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부삽으로 슬쩍 건드려 당기면 쑥 뽑힌다.
생강은 열대 식물이며, 열대 지방에서는 꽃이 핀다. 우리나라에서는 겨울에 들면 잎이 시들고 꽃을 볼 수가 없다.
재배 환경에 의해 다년생이 일년생으로 바뀐 것이다. 꽃이 피지 않으니 열매가 없고, 따라서 씨앗으로 번식이 안 된다.
우리가 먹는 생강은 땅속덩이줄기이다. 이 덩이줄기를 조각내 심으면 싹이 돋고 성장을 한다.
그러니 생강은 오롯이 덩이줄기만으로 번식한다고 보면 된다.
생강의 이런 특성으로 인하여 잡종을 만들지 못하니 품종 개량도 되지 않으며 품종등록도 할 수가 없다.
향미, 풍미, 서산재래, 봉동재래, 충남3호 등의 품종명이 있기는 하지만 품종이라기보다 우수한 개체의
덩이줄기를 선발해놓은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국내에 재배되는 생강은, 서산재래, 봉동재래 등 오랫동안 우리 땅에서 내려오던 것과 근래에
중국에서 그 종자를 가져온 것이 있다. 중국 생강은 식용으로 수입되어 종자로 쓰이고 있는데,
그 양이 상당하여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대부분의 생강이 이런 식으로 재배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생강은 대체로 작을수록 그 향이 짙고 맵다. 그래서 작은 생강을 으레 토종생강이라 한다.
중국에서 가져오는 씨앗용 생강이 대부분 크고 향이 적으며 매운맛이 덜하기 때문에 이렇게 분류된 것일 수도 있다.
작은 생강은 소강(小薑)이라 하고, 그보다 약간 큰 것은 중강(中薑), 아주 큰 것은 대강(大薑)이라 부른다.
종자용으로 쓰이는 생강을 종강(種薑)이라 한다. 수확을 하면 이 종강이 새로 번식된 생강에 붙어 있는데,
이 종강을 이때는 다시 구강(舊薑)이라 부르고 새로 번식된 생강은 신강(新薑)이라 한다.
구강을 재강(再薑)이라 부르기도 하며 질이 떨어지는 생강을 재강이라 하기도 한다.
질이 떨어지는 재강에 비교하여 큼직한 신강을 원강(原薑)이라 한다.
생강을 통으로 찌거나 삶아서 말리면 건강(乾薑)이 된다. 건강은 한약재로 쓰이며 백강(白薑)이라 하기도 한다.
불에 구워서 말리면 검게 되는데, 이는 흑강(黑薑)이다. 얇게 썰어 설탕을 묻혀 건조한 것은 편강(片薑)이라 한다.
서산 생강은 '공식적으로는' 1931년부터 재배되었다.
부석면 강수리의 박인화 씨가 마을 주민들과 생강조합을 결성하고 봉동에서 종자용 생강을 가져와 심은 것이 그 처음이다.
생강은 생으로 보관하는 것이 힘들다. 일정 온도 이상이 되면 싹이 돋고 또 온도가 낮으면 썩는다.
그래서 그때에는 보통 건강으로 유통이 되었다.
박인화 씨는 생강을 생으로 저장하여 유통하면 큰 수익이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는 집 마루 아래에 굴을 파고 생강을 저장하는 방법을 고안하였다.
이 기술이 발전하여 수직으로 5미터 정도 땅을 파서 옆으로 저장실을 내는 방식으로 정착되었다.
사철 신선한 생강을 낼 수 있는 조건이 되자 서울, 평양, 인천 등지로 판로를 확보하고
서산을 넘어 태안에까지 생강 저장 기술을 보급하였다. 2010년 현재 서산의 생강 재배 농민은 2,200여 가구에 이른다.
최근 서산 생강 산업을 확장하기 위해 클러스터사업단이 조직되었다.
그 대표를 맡고 있는 박병철 씨는 박인화 씨의 증손이다.
생강은 보통 양념으로 쓴다. 향이 독특하여 생선과 육류의 비린내를 잡는 데 유용하다.
또 수정과, 식혜, 한과 등에 넣어 향을 더하기도 한다.
서산 생강은 근래 들어 생강한과로 그 이름이 더 널리 알려지고 있다.
예전부터 서산의 가정에서 명절에 해먹던 것이라 한다.
현재 유명 향토음식으로 자리를 잡은 데는 서산시농업기술센터의 공이 크다.
1997년 농업기술센터에서 농촌 여성 일감 갖기 사업으로 생강한과를 보급하였던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
처음에는 4명의 부녀회원들이 가내수공업 형태로 생강한과를 제조하였다.
그 독특한 향으로 큰 인기를 얻고 지금은 20여 업체가 생강한과를 가공을 하고 있다.
여성 농민들이 부업으로 시작한 사업이 이처럼 크게 번창하는 일은 우리나라에서 드문 일이다.
현재 16개 업체로 생강한과협의회가 구성되어 있으며, 기술센터에서는 앞으로 원재료 공동구매 및
공동생산, 학습 및 홍보관 설립 등 마케팅 지원을 할 계획이다.
글·사진/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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