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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와 함께 더나는 시간여행

기타방/우표여행

by 그린체 2013. 10. 22.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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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날 우표

 

 

 

 

러시아 문학의 대가 도스토옙스키 탄생

 

도스토옙스키(Dostoevskii,1821. 11. 11. ~ 1881. 2. 9.)은 모스크바 태생으로 가난한
의사 아버지 밑에서 행복하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성장했다. 지적이고 온화했던
어머니와 달리 가부장적이고 의처증이 심한 괴팍했던 그의 아버지는 늘 가족들의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결국 집안의 농노들에 의해 비명횡사하게 된다. 이 사건은 그에게 정신적
트라우마로 인한 우울증과 간질이라는 질병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는 생애
마지막 대작을 안겨주었다. 1880년 작[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그의 아버지를 모티브로
쓴 소설로 이 소설을 통해 그는 비로서 평생을 따라다녔던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죄책감을
극복하며 아버지와 화해하게 되었다.
도스토옙스키는 과도기 러시아의 소외된 인간들의 심리를 기도교적 사상으로 담아내며
[죄와 벌] [가난한 사람들] [학대받은 사람들]등의 명작을 남겼다. 그는 러시아의 철학,
종교, 사화 운동 등 각 방면에 걸쳐 후대 많은 작가들에게 사상적 영향을 끼쳤다.

까라마조프의 집안에는 스메르쟈꼬프라는 간질병을 앓는 하인이 있었는데

그 하인은 다름 아닌 아버지 표도르의 사생아였다.

둘째 아들 이반은 교묘하게 스메르쟈꼬프에게 살인을 교사한다.

그러나 아버지가 살해 되었을 때, 정작 살해 용의자로 체포된 사람은

평소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큰 아들 드미뜨리였다.

더욱 점입가경인 것은 이 큰 아들은 자신이 아버지를 실제로 살해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살해 욕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범인과 다를게 없다고 생각해

순순히 선고를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 강대진의 [서양의 고전을 읽는다] 중에서

 

 

철강왕 카네기

카네기(Andrew Carnegie 1835.11.25 ~ 1919.8.11.)는 스코틀랜드의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이주한 미국에서
그는 방적공, 기관조수, 전보배달원 등의 여러 직업에 종사하다가 펜실베이니아 철도
회사에 취직하여 일하던 중 철강 수요 증대에 대한 예측과 천부적인 사업가 기질을
발휘하며 성공적인 투자로 막대한 부를 가지게 되었다. 이 수익을 기반으로 그는
1865년부터 철강업을 시작, 1982년에는 미국 철강 생산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규모의 카네기 철강회사를 설립하였으며 1901년 인수합병을 통해 미국 철강시장의
65%를 지배하는 US 스틸사를 탄생시켰다.
19세기 후반에 미국의 철강산업을 거대하게 성장시킨 장본인이며 당대 최고의 자선
사업가였던 그는 다른 부자들과 달리 은퇴 후 자신의 부를 교육과 문화사업에 투자, 부의
사회 환원을 몸소 실천한 인물로 더 유명하다. 1902년 설립한 카네기협회는 미국 전역에
2,500개의 공공도서관을 건립하였으며 카네기회관, 카네기교육재단 등 교육문화 분야에
3억 달러 이상을 기증했다. 카네기는 성공한 사업가로서, 당대 최고의 자선사업가로서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는 인물로서 기억되고 있다.

카네기가 미국에서 분주히 지내는 동안 발명가이자 사업가인 헨리베세머는

영국에서 장차 철강 산업의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철 생산 공정인

베세머 공정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베세머 공정으로 인해 강철 생산이 산업화될 수 있었다.

영국을 자주 방문했던 카네기는 우연히 베세머 전환기를 볼 기회가 있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혁명이었다.

서둘러 미국으로 돌아온 카네기는 카네기 맥캔들 철강 기업을 설립하고

1870년 처음으로 용광로를 제작했으며 베세머 용광로를 시험 가동했다.

- Business저 [비즈니스 거장에게 배운다]

 

대한민국, 근대 우편업무를 시작하다

고종 21년 개국한 우정총국은 근대 우편업무의 시작을 알리며 첫 발을 내디뎠다.
일본사찰단의 일원으로 일본의 우편제도를 견학하고 온 홍영식의

주도하에 개국한 우정총국은 1884년 11월 18일 역사적인 첫 업무를

개시함과 동시에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인 문위우표를 함께 발행하였다.
급진 개화적 성향이 강했던 홍영식은 김옥균 박영효 등과 함께

개국 축하연 때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청나라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로 끝나며 근대 우편업무는 안타깝게도 20여 일 만에 종료하게 되었다.

화폐 단위인 ‘문(文)’의 이름을 따 수집가들 사이에 붙여진 이름인 문위우표는

발행 당시 5종이었으나 우정총국 개국일에 오문과 십문 2종만이 도착하여

한성(서울)과 인천 간에 운송된 우편물에 사용되었을 뿐,

이십문과 오십문, 백문의 3종은 우정총국이 폐쇄될 때까지 현품이

도착하지 않아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미발행으로 남게 되었다.

종료되었던 우편서비스는 1895년 서울과 각 지방에 우체사가

설치되면서부터 재게 되었다.

문위우표가 사용된 기간은 불과 18일. 근대 우편제도를 담당하는

정부기관인 우정총국이 업무를 개시하자마자 갑신정변이 일어나

문을 닫게 되면서 덩달아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당시 우편은 한성과 인천에서만 시행돼 국민 대다수는 구경도 못했겠지만,

극소수의 사람은 우표 붙인 편지를 주고 받으며 신기해 했을 게 틀림없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편 왕래가 얼마나 있었는지 말해주는 기록이 없다.

우체국 소인이 찍힌 사용 필 문위우표는 국내 수집가의 손에 모두 27장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위우표가 구한 말 혼란한 시기 해외로 흘러갔기 때문에 주로 외국에서 구입해온 것들이다.

- 이종탁의 [우체국 이야기] 중에서

 

 

반 고흐 자신의 왼쪽 귀를 자르다

빈센트 빌럼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 3. 30 ~ 1890. 7. 29)는
정신질환으로 인한 고통을 소용돌이와 불타는 노란색으로 표현한 네덜란드의 화가이다.
[별이 빛나는 밤에] [해바라기] [자화상] 등 수많은 걸작들을 남겼지만 생전에 그의
작품들은 푸대접을 받았으며 알콜중독과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불우한 인생의 위대한 예술가였다.
1888년 12월 23일 프랑스 아를에서 그림을 그리던 그는 자신의 왼쪽 귀를 면도칼로
잘라 평소 호감을 가지고 있던 창녀 라셀에게 선물로 보내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고흐의 이 사건은 자화상이라는 그림과 함께 여러 가지 추측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중 하나인 초록색 악마의 술이라고 불리는 압생트에 중독되어 자해를 했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이 술은 강력한 환각작용과 중독증을 유발하는 술로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엄청난 인기를 끌던 술이었다.

특히 모파상, 랭보, 피카소, 헤밍웨이 등 많은 유명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술로

알려져 있으며 불타는 듯한 노란색에 집착했던 고흐 역시 압생트에 중독되어

병원치료를 받았던 기록이 있다.

고갱과 예술적 견해가 달랐던 고흐는 압생트를 마시다가 고갱과 심한 다툼을 하게 되고

결국 우울증의 악화로 자신의 귀를 자르는 사건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 사건 이후 그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고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던 고흐는 2년 후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야 말았다.
그의 작품들은 그가 사망한 뒤 10여년이 지난 후 파리의 반 고흐 그림 전시회를 통해
유명해졌으며,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으로 평가되고 있다.

반 고흐는 네델란드의 화가로 현대 인상파 예술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해바라기]는 반 고흐의 대표작으로 그는 일생에 얼마나 많은 해바라기를 그렸을까?

통계에 따르면 여섯 점 정도라고 한다.

먼저 고흐는 네 점의 [해바라기]를 그렸는데 그림 속의 해바라기 수는 각기 다르다.

그중 한 그림에는 해바라기가 세송이밖에 안 되고 다른 그림에는 다섯 송이

그리고 나머지 두 작품에는 각기 열 두송이와 열 네송이의 해바라기가 그려져 있다.

- 양지에 의 [세계 역사의 미스터리 상]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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