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신비로운 한국 향신료 지리산 초피

요리 이야기/식재료3

by 그린체 2016. 10. 19. 12:48

본문

지리산 초피 신비로운 한국 향신료 가을에는 봄여름 꽃이 핀 자리에 열매가 달린다. 크고 단 열매만이 아니라 작고 보잘것없는 열매도 있다.<br>초피가 그렇다. 그러나 그 향은 신비롭다.   


초피나무 열매이다. 초피나무는 운향과의 식물이다.

키가 3미터 정도 자라고 가지에 가시가 있다. 5~6월에 꽃이 피고 8~9월에 열매를 맺는다.

어른 손톱의 5분의 1 정도 되는 작은 열매이다. 이 초피의 겉껍질을 향신료로 쓴다.

가장 흔하기로는, 추어탕에 넣는다. 초피의 사투리가 많아 사람들이 헛갈려 한다.

경남에서는 제피, 경북에서는 산초, 강원도에서는 조피, 전남에서는 젠피라고 부른다.

이 중 산초는 산초나무의 열매인 산초가 따로 있어 혼란 더욱 심하다.

산초나무는 같은 운향과 식물이고 열매의 모양도 초피와 비슷하지만 맛과 쓰임새는 전혀 다르다.

간단하게 구별하자면, 초피는 열매의 겉껍질을 주로 쓰는 향신료이고 산초는 주로 열매의 씨앗에서 기름을 짠다.

열매를 씹으면, 초피는 입안이 마비될 정도로 아리고 산초는 옅은 향만 있다.





1 초피는 말려서 판다. 이를 분쇄하여 사용하는데 씨앗은 바르는 것이 좋다.

2 경남 산청의 초피농장이다. 잎사귀 뒤로 초피가 달려 있으나 워낙 잘아 잘 보이지 않는다.
3 초피를 따면 열매와 연결된 가지와 잎사귀까지 같이 따진다. 이를 일일이 고르고 있다.




초피가 산초로 잘못 알려진 이유

이런 간단한 구별에도 초피가 산초로 잘못 알려지고 있는 이유는 일본의 영향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초피를 산초라고 한다. 초피의 요리 활용도가 상당하여 국내에서도 일본의 초피 첨가 제품을 수입하기도 하는데,

여기에 산초()라고 적혀 있다. 또 하나, 중국에서 수입되는 초피로 인한 혼란도 있다.

사천(쓰촨)요리의 매운맛은 초피가 일정 역할을 하는데, 이를 ‘사천후추’라고 칭하여 일반에 알려지고 있다.

초피에 대한 이같은 용어 혼란은, 우리 땅에 이미 존재하는 식재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가

같은 종류의 식재료가 들어간 외국 음식이 알려지면서 외국 식재료 이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초피의 산지는 중국과 한국, 일본 등 아시아이며 세계 음식 시장에서는 이미 유명한 식재료이다.

특히 후추의 매운맛이 나면서 독특한 아로마 향을 지니고 있어 ‘동양의 신비한 후추’로 여긴다.

중국 사천요리를 통해 널리 알려져 Szechuan(Shichuan) pepper, 아니스 향이 나는 후추라 하여 anise pepper,

검정과 흰색의 후추와 달리 갈색이 난다 하여 brown pepper 등으로 불린다.

또 중국요리를 통해 알려졌으므로 Chinese pepper라고도 부르며, 일본에서는 자국의 초피 제품에 대해

Japanese pepper라고 표기하여 전세계에 뿌리고 있다. 여기에 우리의 이름인 초피는 끼일 틈이 없다.

일부 초피 생산자들은 Japanese pepper의 종자가 우리 땅에서 건너간 것이고

지금도 일본에서 우리 초피를 수입하여 세계에 수출을 하고 있으므로 Korean pepper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추어탕에나 넣어 먹을 뿐일 정도로 초피 자체를 한국음식에서 귀히 여기지 않는 현실을

세계인의 시각에서 보면 이런 주장은 억지일 뿐이다.



고추에 밀려난 토종 향신료

초피나무는 경상도와 전라도, 영동지방 등에서 자생한다.

농장을 꾸려 재배하기도 하는데 산지 어디에서든 잘 자라 자연산이 더 많다.

초피의 질은 향이 얼마나 좋은가에 따라 결정되는데

일반적으로 지리산 일대에서 나오는 것을 최상품으로 친다.

8~9월 지리산을 끼고 있는 지역인 산청, 함양, 남원 등지의 시장에 가면

산에서 따온 초피를 내놓은 할머니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가격은 제각각인데 씨앗을 따로 털지 않은, 말린 것으로 작은 되 하나에 5,000~1만원씩 한다.

지난 몇 년간 오지 않던 일본 바이어들이 올해는 지리산 일대에서 초피를 수집하고 있다.

8월 말 현재 수집가격은 1킬로그램에 6,000원인데 가격은 더 뛸 수도 있다고 한다

.

산에서 초피를 따는 작업은 힘겹다. 초피나무는 습기가 축축한 땅에서

잘 자라 조그만 천이 흐르는 계곡 근처에서 흔히 발견된다.

나무와 풀을 헤집고 들어가 열매를 따자면 초피나무의 가시에 긁히고 찔리는 것 정도는 감수하여야 한다.

열매가 잘다 보니 시간당 수확량이 적다. 한 사람이 한나절에 2~3킬로그램 딴다.

이를 햇볕에 한나절 말리면 겉껍질이 오그라들면서 씨앗이 삐져나온다.

씨앗을 빼낸 후 분말을 만들어 쓴다.

씨앗 빼내는 작업이 어려워 씨앗이 든 채로 분말을 만들기도 한다.

한국음식에 초피는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추어탕과 민물매운탕의 비린내 제거용으로 쓰이는 것이 가장 흔하다.

또 장아찌를 담그기도 하는데, 이도 흔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예부터 초피가 이렇게 제한적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음식 관련 고문헌에는 초피가 흔히 나온다.

고추가 없던 시절, 매운맛을 낼 수 있는 식재료로 초피는 긴요하게 쓰였던 것이다.

고추가 초피 자리를 대체하면서 한국음식에서 초피는 급격하게 ‘몰락’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초피에 단지 매운맛만 있는 것이 아님을, 한국음식에 독특한 토종 향신료로 사용될 수 있음을

이제라도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글·사진/ 황교익 | 맛 칼럼니스트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