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이 남아돈다. 햇벼를 거두고 있는데 창고에는 지난해 거둔 벼로 가득하다.
그러니 쌀값이 떨어졌다.
농협마트에서 파는 20킬로그램 쌀 한 포대 가격이 지난해 이맘때에 비해 7,000원 정도 하락했다.
화가 난 농민들이 벼를 갈아엎는다는 뉴스도 있다. 이 와중에도 쌀 재고 걱정을 그다지 하지 않는 지역이 있다.
철원이다. 오대벼의 명성 덕이다.
1 누렇게 벼가 익은 철원평야. 북한과 접하고 있어 평야의 일부는 민간인통제구역(DMZ)안에 있다.
2 수확을 하고 있는 철원 농민이다. 쌀값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수확의 기쁨은 같다.
3 갓 거둔 철원 오대벼이다. 오대벼는 쌀알이 약간 굵다.
강원도는 쌀 주산지라는 이미지가 없다. 즉, 소비자들은 강원도 쌀이 맛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철원 오대쌀’이라고 하면 소비자들은 경기 여주쌀이나 이천쌀 레벨로 여긴다. 가격도 비슷하다.
그래서 철원 관내 농협 미곡처리장들은 쌀 재고 걱정을 하지 않는다. 2008년산 철원 오대벼는 다 나가고 없다.
물론 쌀값이 전체적으로 떨어져 가격 하락의 부담은 있다. 이번 취재를 갈 때 내심 걱정을 했다.
벼를 갈아엎었다는 소식 때문이다. 괜히 농민 마음만 더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닌지 하는 걱정이었다.
그러나 철원평야에서 만난 농민들은 나름 수확의 기쁨은 누리고 있었다.
수매 가격에 대한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농사가 잘되었다며 다들 밝은 표정을 지었다.
한민족 5,000년의 역사에서 쌀을 넉넉히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1972년 보급된 통일벼가 쌀의 자급자족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통일벼는 기존의 벼보다 수확량이 40% 많았다.
여기에 농지 정리와 기계화 등 농업기술의 발달이 더해져 1980년대에 들면서 쌀이 남아돌기 시작하였다.
1992년 수확량은 많지만 밥맛이 없는 통일벼는 퇴출되었다. 이 즈음부터 쌀의 경쟁력은 ‘밥의 맛’으로 변하였다.
배가 부르니 입이 ‘간사스러워진’ 것이다. 밥맛 좋기로는 예나 지금이나 경기미의 명성을 누를 수 있는 쌀이 없다.
특히 경기 지역에서 나는 아키바레(秋晴)는 한국 최상의 쌀로 각인되어 있다. 아키바레는 일본에서 도입한 품종이다.
이 쌀이 맛있으면 다른 지역에서도 이를 심으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농작물은 자연환경과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그 형질이 그대로 발현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즉, 경기 아키바레와 강원 아키바레는 자라는 토질과 기후 등이 다르니 맛도 다르게 되는 것이다.
오대벼는 1982년 농촌진흥청 작물시험장에서 육성한 품종이다.
냉해에 강하고 재배 기간이 짧은 품종으로 개량되었다. 즉 북부 산간지에서 재배 가능한 벼로 육성된 것인데,
강원 지역에 꼭 맞는 품종인 것이다. 오대벼의 적응력은 상당히 뛰어나 현재 강원 지역에서 가장 많이 심는 품종이 되었다.
농작물이 맛있으려면 그 농작물이 가지고 있는 형질이 100% 발현되어야 한다.
그런데 농작물의 형질이 100% 발현될 수 있는 자연환경이란 것이 그렇게 넓지가 않다.
평균 기온 1~2도의 차이, 토양에서의 모래질 혼입 몇 퍼센트의 조그만 차이 등등으로
농작물의 형질은 제각각 발현된다.
심지어 3,000평짜리 논 하나에서도 가운데에서 자란 벼와 가장자리의 벼의 맛이 다르다.
오대벼가 강원 전역에 심어지고 있지만 ‘철원 오대벼’가 맛있다는 명성을 가지게 된 것은 이같은 ‘품종과
자연환경의 궁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철원 오대벼’가 맛있는 까닭에 대해서는 특히 벼가 여무는 시기의 일교차를 들 수 있다.
이삭이 다 나오고 난 이후인 8월 6일부터 9월 15일 사이에 벼가 익기 시작하는데
이때 철원 지역의 일교차는 섭씨 8~11도에 이른다. 낮에는 햇볕이 쨍하고 밤에는 찬 공기가 감싸는 것이다.
이런 기후에서는 낮에 광합성을 하여 얻은 영양분을 밤에 벼로 잘 축적하게 되어 맛있는 쌀이 된다.
또 흙이 질참흙이라는 점, 물이 맑다는 점 등이 ‘철원 오대벼’의 맛을 더한다.
오대벼는 여느 품종에 비해 쌀알이 약간 크다. 또 밥을 하고 난 후 식었을 때도 쉽사리 딱딱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특히 도시락용으로 안성맞춤이다.
‘철원 오대벼’는 대부분 철원 관내의 농협 미곡종합처리장에서 수매를 한다.
일반적으로 수확 후 수분 함량을 16%로 건조한 벼로 받는다.
수확 후 곧장 수매에 내기도 하는데 이를 물벼라고 하며 미곡처리장에서 건조를 한다.
미곡처리장에서는 다른 품종의 벼도 수매를 하지만 오대벼와 섞이지 않게 따로 보관한다.
보관창고는 한여름에도 섭씨 15도를 넘지 않도록 유지한다. 그 온도를 넘기면 맛이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관한 벼는 그때그때 도정을 하여 연중 시장에 낸다. 가정에서의 보관도 중요하다.
벼에서 쌀로 도정되고 난 다음에는 되도록 빨리 먹는 것이 좋다.
벼는 살아 있는 상태이므로 오래 보관하여도 변성되지 않지만, 쌀은 죽은 상태이므로
실온에서 10여 일 지나면 단백질이며 지방질에 변성이 오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은 봉지의 것을 자주 사는 것이 맛있는 밥을 해먹는 요령이다.
또 쌀 포대에 도정 날짜가 찍혀 있으므로 가장 최근 날짜의 쌀을 고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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