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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옹정황제의 여인 (후궁 견훤전)

드라마와 영화

by 그린체 2012. 5. 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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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정황제의 여인

 

케이블 채널 CHING에서  중국 드라마 ‘옹정황제의 여인’을 방송한다.

청나라 옹정황제 시대 궁중여인들의 사랑과 암투를 그린 72부작 드라마다.

이 작품은 2007년 온라인 소설 부문 1위이자 출간 후 100만권을 돌파한 베스트셀러 『후궁견환전』을 토대로 만들었다.

지난해 중국 지상파 BTV(베이징TV)에서 시청률 13.99%를 기록했다.

 

 

소개 :  청나라 옹정제의 등극 초기. 황실여인들의 권모술수 이야기

제작 :  정효룡(연출), 유염자(원작), 유염자, 왕소평(극본), 조평(제작), 사택(촬영), 요정

 

 

 

 

줄거리 개요

청나라 옹정제의 등극 초기.

태후는 황실의 번창과 조정 세력의 견제를 이유로 새로운 후궁들을 간택하기로 한다.

관리 견원도의 딸인 견환은 뛰어난 미모와 재기로 상재에 봉해지고

귀인 심미장, 답응 안릉용과 서로 의지하며 친하게 지낸다.

대장군 연갱요의 친누이 화비는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 안하무인이지만

병약한 황후는 그저 지켜볼 뿐 어쩌지 못한다.

천진난만한 견환은 승은을 입은 후 황제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지만

황제의 총애를 뺏긴 화비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견환을 핍박해 결국 아이마저 유산하게 만든다.

한편, 황제는 연갱요를 견제하기 위해 견환의 아버지인 견원도를 이용하지만

견원도는 뜻을 이루지 못한 채 감옥에 들어가고 견환도 음모에 의해 총애를 잃게 된다.

궁궐의 암투와 냉혹한 인심을 알게 된 견환은 궁중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출궁하여 감업사로 들어간다.

감업사에서도 다른 여승들의 핍박을 받던 견환은 우연히 황제의 아우인 17황자 과군왕의 도움을 받는다.

그때부터 묵묵히 견환을 지켜주던 과군왕,

결국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마음이 끌려 사랑에 빠지고 때를 봐서 도망치기로 결심한다.

견환은 과군왕의 아이를 갖게 되지만, 과군왕이 지방을 순시하던 중 죽었다는 오보가 전해진다.

 견환은 과군왕의 복수와 복중 태아를 지키기 위해 다시 황제를 유혹해 궁으로 돌아온다.

쌍둥이를 낳은 견환은 권력의 실세로 떠오르고 후궁들과 황후는 견환에게 위기의식을 느끼는데...

 

 

 

 

 

황제의 아내들은 크게 여섯 계급으로 나뉘어진다.

첫 번째는 황후로, 한 명만 봉해지며 내궁의 사무를 다스리고 관장한다.

두 번째는 비이다. 비는 황귀비 한 명, 귀비 두 명, 비 네 명으로 구성된다.

세번째는 여섯 명의 빈이다.

그 아래로 귀인, 상재, 답응 등이 있다.

황후가 중궁에 기거하고, 비빈들은 동서의 십이궁에 나누어 기거한다

황제는 자신의 후궁으로 들이기 위한 수녀를 3년에 한 번 뽑았다.

 

한편 이와는 별도로 1년에 한 번씩 뽑는 궁녀도 있었는데,

이들은 후궁을 보필하거나 궁중의 허드렛일을 위해 뽑히는 보통 궁녀들로 일반 평민의 자제이다.

당시 내무부 3기 관할에 속한 만 13세 여자는 모두 의무적으로 궁녀 선발에 참가했고,

여기에서 합격한 대부분의 여자들이 궁녀가 되었다.

입궁 후에는 황제의 눈에 들어 비빈에 봉해질 수도 있었으나,

황제의 눈에 들지 못한 대다수의 여성들은 궁에서 25년간 일한 후에야 출궁하여 결혼할 수 있었다.

 

 

 

청나라의 복식

황제 조복은 명황색의 조복, 조관, 화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반 관원들은 화의라고 부르는 망포를 입었습니다.

남자복식은 포, 마괘, 오, 마갑, 삼, 고를 입었고 청대에는 일상복에 직접 방형(네모난형)

또는 원형을 상의에 수놓는 특별한 보자의 양식을 취하였는데 이것을 보복이라고 하였습니다.

상의의 겉옷으로 황족은 사차를 입고 평민은 불개차를 입었으며 신발류는 공복에는 화를 신고, 편복에는 혜를 신었다고합니다.

 

청대의 여자복식은 남자복식과는 달리 만주족의 복식이 각각 유지되었고 점차적으로 한족의 여자복식은

만주족의 여자복식에 융화되어 특유의 청대복식을 만들어갔습니다. 황족명부예복은 기본적으로 남자의 조복과 같으나

하피만을 여자의 전용으로 더 입었고 봉관을 썼으며 청대의 황후조복은 조관, 조포, 조군과 조괘로 구성되어 있고.

고자는 일반여성들이 입었고 한족의 전족은 목저궁혜를 신었고 만주족의 전족은 목저혜를 신었습니다.

청말부터 입기 시작한 치파오는 태평천국과 중화민국을 거쳐 현재까지도 민속복으로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청대는 만주족이 중원을 통치한 시기로 한족들의 문화는 모두 개혁되고 있었다.

청대는 한족의 모든 문화를 바꾸려고 하면서 잔학한 진압정책을 폈다.

황색은 황제의 색으로 황제가 하사한 것이 아니고는 절대로 황색을 입을 수 없었다.

또, 용이 그려진 용포는 황제를 상징했으며, 용 또한 민간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고

발톱이 4개인 용은 망이라 하여 사용을 허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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