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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체 2011. 2. 28.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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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태생 미국의 전화 발명가 벨(Bell, Alexander Graham, 1847.3.3~1922)

 

영국 태생 미국의 전화 발명가 벨(Bell, Alexander Graham, 1847.3.3~1922) 내용시�

 

말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학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벨은

보스턴에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농아학교를 운영하였다.

아버지의 조수로 일하기 전부터 소리에 관한 연구를 했던 벨이었지만 본격적인 실험과 연구를 하기 시작한 것은

아버지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성공적인 강연과 더불어 농아치료에 대한 긍정적인 결과를 얻은 시기부터이다.

1872년 농아교사의 훈련을 위한 학교를 세운 벨은 보스턴 대학 음성 생리학교수를 지내며

소리를 전달하는 기구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기술자인 토머스 웟슨의 도움을 받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건강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연구에 전념하였다.

드디어 1876년 역사적인 전화기발명 특허를 얻은 벨은 수많은 소송에 휩싸였지만

결국 자신이 발명한 모든 권리를 확고히 하는데

성공하였고 더 나아가 획기적인 발명품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였다.

벨의 가장 큰 업적가운데 전화기 발명을 빼 놓을 수 없겠지만 이후 광선으로 소리를 전달하는

광선전화의 연구, 소리를 녹음하는 그래포폰(Graphophone)의 발명 등 그가 이룩한 업적들 역시

인류의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긴 것들이다.

1877년 벨전화회사를 설립한 그는 1880년 프랑스로부터 볼타상을 받았으며,

상금으로 받은 5만 프랑을 볼타연구소 건립에 사용하며 평생 농아교육에 전력하였다.

 

 

 

#한국방송공사(KBS) 창립 - 공영방송 출범 (1973.3.3)

한국방송공사(KBS) 창립 - 공영방송 출범 (1973.3.3)

 

 

내용시작1973년 방송의 공공성을 확립하고, 보다 효율적인 방송의 운영을 기하기 위해

한국방송공사가 출범함으로써 우리나라에 공영방송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의 방송은1927년 2월 16일 경성방송국(JODK)이 개국되어 정식으로 방송전파를 발사한 이래

꾸준히 발전되어 1937년 경에는 평양, 부산, 대구, 광주, 이리, 청진 등의 지방 네트워크가 완성되었다.

1927년 라디오 방송개시, 1947년 ITU에서 한국에 호출부호 'HL' 할당. KBS (중앙방송국)로 시작하여

1948년 국영방송사로 출범한 KBS는 1961년 텔레비전방송 개국과 더불어 명실상부한 종합방송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1973년 한국방송공사로 새로 태어난 KBS는 현재 KBS 1TV와 KBS 2TV 그리고

KBS World 등 3개의 TV채널과 1,2,3 라디오와 1,2 FM 그리고 한민족방송과 KBS WORLD Radio 등

7개 라디오 채널을 운용하면서 TV와 라디오를 통해 매주 260여 프로그램을 송출하고 있다.

KBS는 TV수신료와 광고 수입으로 운영하고 있으나 공영성 강화를 위해 1TV와 1라디오에는

1994년 10월 이후 광고를 하지 않고 있다.

 

 

 

2006..3.3 숭례문 중앙통로 개방

2006..3.3 숭례문 중앙통로 개방 내용시작

 

지난 2006년 3월 3일 근 한 세기만에 서울의 정문인 숭례문이 열렸다.

조선조 3대 태종 때 건립된 숭례문은 수많은 풍상과 참화를 견뎌내며 서울의 정문으로서 당당히 자리 잡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 한양성곽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성벽이 헐리며 도로에 둘러싸인 섬이 되었지만

우리나라의 상징으로써 언제나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숭례문은 1962년 국보 1호로 지정되었으며 1996년 역사 바로 세우기 사업의 하나로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지만 그간 일반인의 접근이 차단되어 왔다.

그러나 2006년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에 의해 일반 국민들이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개방을 허용하기로 결정하고

3월 3일 성대한 기념식과 더불어 홍예문을 활짝 열어 국민들을 맞이하였다.

지난 600여 년간 우리나라의 심장부인 수도의 정문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이 왕래하였던

숭례문은 새로운 천년을 살아가는 오늘의 사람들에게 과거를 잇는 시간의 문을 활짝 열었던 것이다.

그러나 숭례문은 개방이후 2년이 흐른 2008년 2월 한 사람의 잘못된 생각에 의해 전소되는 운명을 맞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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