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창의사 도쿄 의거
'
제 나이 이제 서른 한 살입니다.
앞으로 저는 서른 한살을 더 산다고 해도 지금까지 보다 더 나은 재미는 없을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지난 30년 동안에 인생의 쾌락이란 것을 대강 맛 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영원한 쾌락을 위해서 독립사업에 몸을 바칠 목적으로 상하이에 왔습니다.'
이봉창의사가 김구선생께 토로한 이 말은 우리들이 가슴 깊이 새겨야할 금언이라 할 수 있다. '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營圈)'이란 미명(美名) 아래 동양평화를 유린하고 있던 일본 제국주의는
한, 중 갈등을 야기하여 중국정부로 하여금 상하이에 있던 우리나라 임시정부활동에 제약을 가해왔다.
이로 인하여 침체에 빠져있던 우리 임시정부는 1932년 1월 8일 일본육군관병식(日本陸軍觀兵式)에
참석하러 가던 히로히토 일본왕의 무리에 게 폭탄을 던진 이봉창의사의 의거로 새로운 활력소를 얻게 되었으며
전 세계에 한민족의 용기 있는 민족적 역량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같은 해에 있었던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와 더불어 어려울 때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바친 선열들의 숭고한 회생정신은,
오늘날 일부 사회계층에 만연되어있는 개인주의와 집단이기주의에 경종을 울려주고 있으며,
세계 곳곳에서 추진되고 있는 블록경제체제의 구축에 따른 총체적 어려움을 극복해야 할
우리의 나아갈 길을 밝혀주고 있다.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물리학 분야에 대한 그의 업적은 매우 특별한 것들이었다.
1982년 대영제국의 3등훈장을 받은 그는 왕립학회의 최연소 회원(1974),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중력물리학 교수(1977), 아이작 뉴턴이 지냈던 케임브리지대학교 루카스 좌(座) 수학 교수(1979)를 지냈다.
모두 그의 나이 40 이전에 이룬 결과들인 것이다.
휠체어에 몸을 맡긴 외소한 체구의 이 천재는 1973년 블랙홀에 관한 종래의 학설을 뒤집으며 물리학계에 데뷔하였다.
이와 더불어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한 ‘특이점 정리’, ‘양자우주론’ 등 현대물리학에
혁명적 이론을 제시하며 갈릴레이, 뉴턴, 아인슈타인에 이어 금세기 최고의 물리학자 반열에 올랐다.
미국의 대표적인 SF 드라마 ‘스타트렉’과 ‘더 심슨’에도 출연했을 만큼 공상과학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진 그는 일반인들 위한 집필을 통해 물리학의 대중화에도 힘썼다.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
로큰롤의 제왕, 황제 등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그는 로큰롤을 세계에 알린 미국의 가수 겸 영화배우이다.
‘The Hillbilly Cat’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힙을 흔들며 노래하는 독특한 무대 매너 덕분에
‘Elvis the Pelvis’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동시대 가히 파격적인 그의 공연장면은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으며 텔레비전 방송 금지 요구 등
로큰롤이 청소년 비행의 원인이라고 까지 비화되기도 하였다.
그는 작사, 작곡은 하지 못하였지만 천부적인 끼와 재능을 겸비한 가수였다.
흑인의 불루스와 백인의 컨트리를 절묘하게 융합시킨 그의 노래들은 독특한 창법과 함께 항상 열광적인 팬들을 몰고 다녔다.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로서 혹은 최다 히트 싱글기록(151회, 기네스 인정기록)을 가진 가수로서
비틀즈와 레드 제페린 에게까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유명하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레코드 판매량은 정확히 집계된 바는 없지만 1977년 6억매,
1985년 10억매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2005년 미국의 경제지 포브스의 발표에 따르면 연간 인세 수입만 4500만달러로
5년 연속 세계최고 갑부 반열에 올랐다고 한다.
우표와 함께 떠나는 시간여행 (0) | 2011.01.17 |
---|---|
우표와 함께 떠나는 시간여행 (0) | 2011.01.10 |
우표와 함께 떠나는 시간여행 (0) | 2010.12.27 |
우표와 함께 떠나는 시간여행 (0) | 2010.12.20 |
우표와 함께 떠나는 시간여행 (0) | 2010.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