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와 함께 떠나는 시간여행
조선왕조 건국편이라 좋은 공부 합니다
고려의 우군 도통사를 맡았던 이성계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1392년 7월 17일 고려의 마지막 왕이었던
공양왕의 왕위를 물려받아 새 왕조를건국하였다.
그 왕조의 이름이 조선이다.
말의 어원에 '동방'과 '광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땅이 동쪽에 있어 해 뜨는 곳, 또는 아침의 나라 라고도 하였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단군왕검이 세운 나라의 국호도 조선이라고 해서 이를 구분하기 위해,
이를 고조선(古朝鮮)이라 하고, 1392년 이성계가 신진사대부와 협력하여 고려(高麗)에 이어 세운 왕조를 조선이라고 했다.
조선(朝鮮)은 1392년부터 1910년까지 한반도 지역을 통치하였던 왕국으로 통상 조선 왕조(朝鮮王朝)라고 하며,
조선 내부적으로 대조선국(大朝鮮國)이라는 명칭을 어보(御寶), 국서(國書) 등에 사용하였다.
태조 이성계 이후 500여년동안 존속되었던 조선은 유교에 의한 통치 이념을 기본으로 임금과 신하에 의한 법치를 중요시 여겼다.
조선 시대 동안 한반도에서는 한글의 창제와 과학 기술 및 농업 기술의 발달 등이 이루어졌으며
임진왜란을 비롯한 여러 외침을 극복하고 현재의 한국 문화의 직접적 전통의 기반이 되는 문화를 형성하였다.
천마도가 그려져 있는 채화판은 자작나무껍질을 여러 겹 겹치고 맨 위에 고운 껍질로 누빈 후, 가장자리에 가죽을 대어 만든 것이다.
중앙에는 흰색으로 천마가 그려져 천마도장니는 말의 안장 양쪽에 달아 늘어뜨리는 장니에 그려진 말그림이다.
가로 75㎝, 세로 53㎝, 두께는 약 6㎜로 1973년 7월 15일, 경주 황남동고분 155호분(천마총)에서 발견되 있으며,
테두리는 흰색·붉은색·갈색·검정색의 덩굴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천마는 꼬리를 세우고 하늘을 달리는 모습으로, 다리 앞뒤에 고리모양의 돌기가 나와 있고
혀를 내민 듯한 입의 모습은 신의 기운을 보여준다.
이는 흰색의 천마가 동물의 신으로, 죽은 사람을 하늘 세계로 실어 나르는 역할이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게 한다.
5∼6세기의 신라시대에 그려진 천마도의 천마의 모습 및 테두리의 덩굴무늬는 고구려 무용총이나
고분벽화의 무늬와 같은 양식으로, 신라회화가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 그림이다.
또한 신라회화로서 현재까지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작품으로 그 가치가 크다.
프로나 아마추어를 불문하고 선수 개인의 국적에 의해 출전하여 국가간 기량을 가늠하는
월드컵은 국제축구연맹(FIFA)이 올림픽 중간 연도를 택해 4년마다 한 번씩 개최하는 세계선수권대회를 말한다.
FIFA의 주관 아래 처음으로 개최된 월드컵축구대회는 1930년 7월 13일 13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우루과이에서 열렸다.
1929년 5월 18일 바르셀로나총회에서의 결정에 의해 개최된 1회 월드컵은 FIFA 회장인
프랑스의 줄 리메(Jules Rimet)의 노력으로 유럽 4개국,
남·북아메리카 9개국 등이 지역별 예선전 없이 초청형식으로 출전하게 되었다.
프랑스와 멕시코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7월 30일까지 18일간 펼쳐진 첫 월드컵은 예상과는 달리 수준
높은 경기내용을 펼치며 개최국인 우루과이가 우승, 아르헨티나 준우승, 미국이 3위를 차지하며 성공적인 대회로 마무리 되었다.
우승컵은 당시 회장이던 줄리 메(Jules Rimet)가 제공한 줄리메컵(Jules Rimet Cup)이 수여되었으며 이후 대회
규정상 3번 우승한 브라질에게 영구히 넘어가게 될 때까지
줄리메컵 세계선수권대회라고 불렸다. 1971년 FIFA에서 우승컵을 제공한 뒤부터 FIFA 월드컵이라고 불린다.
지난 6월 11일부터 진행된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은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의 성과를 내며
한국을 다시금 하나로 뭉치게 했다.
올림픽 위원회는 올림픽정신을 국내에 보급/발전시키고 한국의 체육 및 스포츠 활동을 국제무대로
확산하여 인류평화에 기여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
대한올림픽위원회(KOC : Korean Olympic Committee)는 1946년 7월 15일 조선올림픽대책위원회라는 명칭으로 창설되어,
1947년에 제41차 IOC(IOC : 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국제올림픽위원회)총회에서 IOC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하였다.
KOC는 대한민국 정부가 채 수립되기 전인 48년 1월 30일에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열린 제 5회 동계올림픽에
태극기를 앞세우고 출전, 올림픽 가족이 되었다.
48년 런던올림픽은 KOC가 선수단을 파견한 첫 하계올림픽이다.
KOC는 2차례의 올림픽(제6회, 22회)을 제외하고는 모든 올림픽에 참가, 전세계 올림피안들과 평화와 우정을 함께 나누었다.
특히 1952년 핀란드 헬싱키하계올림픽은 전쟁중에도 참가하여 올림피즘의 숭고한 이상을 앞서 실천한 나라로 찬사를 받았다.
1948년 7월 17일에 제정, 공포된 대한민국 '헌법'의 제정을 기념하는 날인 제헌절은
우리나라 4대국경일의 하나로 매년 7월 17일로서 국경일로 지정되어 있다.(2008년부터 법정공휴일에서 제외됨).
제헌절은 조선왕조 건국일인 7월 17일에 맞추어 공포하였다.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한 헌법의 제정을 경축하고, 자유민주주의
를 수호하며 헌법수호를 다짐하는 기념행사를 거행하며, 가정에 국기를 게양하여 이날의 뜻을 높이고 있다.
미국의 영화감독이며 TV 연출가인 월트 디즈니의 창조력이 만들어낸 세계 최초의
테마 파크 '디즈니랜드'가 1955년 7월 1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에서 개원했다.
모험의 나라, 환상의 나라, 개척의 나라 등으로 구분되어 있는 상상의 나라,
디즈니랜드는 방문자들에게 놀라움과 즐거움을 선물하고 있다.
어린이에게는 꿈과 모험과 미래를
안겨주고, 어른들에게는 지난날의 향수와 동심의 세계를 선사해 온 이곳은 오늘날까지도 대표적인 명소로 꼽히고 있어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갔다.
1971년 플로리다주(州) 올랜도에 디즈니랜드의 100배가 넘는 넓은 부지에 월트 디즈니월드를 개설했
고 1983년에는 일본의 지바현 우라야스시(市)에 총 넓이 820.6㎢의 도쿄디즈니랜드를 개장했다.
올림픽 체조부문에서 사상 첫 10점 만점을 기록한 선수가 배출되었다.
그 주인공은 루마니아의 체조선수 코마네치(Nadia Comaneci, 1961.11.12 ~ )로 그녀는
1967년 루마니아의 체조 국가대표 선수단의 코치인 벨라 카롤리의 눈에 띄어 6세 때부터 체조를 시작했다.
코마네치는 1976년 7월 18일, 캐나다의 몬트리올에서 개최된 제21회 올림픽경기대회의 이단평행봉에서
체조역사상 처음으로 10점 만점을 기록하였고, 이 대회에서 7차례나 10점 연기를 펼치며 개인종합과 평균대,
이단평행봉 등 3관왕에 올랐고 단체전에서 은메달, 마루운동에서 동메달 등 5개의 메달을 획득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로써 그녀는 루마니아의 국민적 영웅이 되어 “사회주의의 영웅(Hero of Socialist Labour)”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녀의 연기는 힘차면서도 부드럽고, 과감하면서도 우아하여 인간 육체 표현 능력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단종법은 우생학적 입장에서 유전성 정신박약자 등의 생식(生殖) 능력을 없애는 일에 대하여 규정한 법률로,
미국에서 최초로 입법화되었고 그 후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등지에서도 제정되었다.
우생학이란 1883년 영국의 F.골턴이 처음으로 창시한 학문으로 원래 유전학 ·의학 ·통계학 등을 기초로 한다.
이 학문은 우수 또는 건전한 소질을 가진 인구의 증가를 꾀하고 열
악한 유전소질을 가진 인구의 증가를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며, 이를 위하여 육체적 또는
정신적 결함을 가진 사람의 발생에 관한 모든 조건과 인자가 연구의 중심이 된다.
이것을 기초로 악성유전성 질환의 예방을 목적으로 하여 유전성 정신병(정신분열증 ·조울증 등), 백치 등의 정신박약,
유전성 기형, 혈우병 등의 환자를 강제 또는 임의로 단종 시키는 우생법안이 제안되어 부분적으로는
여러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으나 그 운용에서는 아직도 논의가 반복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단종법(斷種法)에서 볼 수 있듯이 범죄자나 알코올중독 환자까지도 그 범위 내에 포함하고 있으며,
또 강제법으로 하고 있는 주(州)도 있다.
독일의 나치스 때 시행했던 극단적인 우생정책(나치가 유대인·흑인·동성연애자들의 몰살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활용한 정책)은 인권을 침해했던 대표적인 예이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태어난 정치가이자 외교관이었던 리(Trygve Halvdan Lie, 1896.7.16~1968.12.30)는
크리스티아니아대학교를 졸업한 뒤 변호사로 일하다가 노동당에 입당하여 1919~1922년 당서기로 활약했다.
1922~1940년 노동당의 법률고문과 전국집행위원을 지냈으며, 1935년 국회의원이 되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법무장관 ·상무장관 ·선박장관 ·공급장관(供給長官)등을 역임하였다.
1940년 독일군이 침입하자 국내에 남아 저항운동을 하다가 런던으로 망명하여, 망명정권의 외무장관이 되었다.
1945년 귀국하여 신정부의 외무장관이 되고, 그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1차 국제연합총회,
기타 국제회의의 노르웨이 대표로 활약하였다.
1946년 초대 국제연합 사무총장에 선출되어 세계평화 20개년 계획을 제창하였으며,
1950년 6·25전쟁 때는 국제연합군 파병 등 한국을 도왔다.
야외에서 자연을 직접 관찰하며 그림그리기를 즐겨했던 부댕(Eugene Boudin, 1824.7.12~1898)은
주로 북프랑스의 노르망디나 브르타뉴지방, 네덜란드의 해변을 테마로 빛나는 외광(外光)을
신선한 색채감으로 표현한 풍경화를 많이 남겼다.
세심한 관찰을 기초로 한 그의 그림은 날씨와 햇빛, 하루 중의 특정한 시간을 나타내는 요소들을 상세히
묘사한 것으로서 19세기 인상주의의 태동을 암시하고 있다.
밀레, 쿠르베, 코로 등과 교류하며
화가의 길로 들어선 부댕의 특색 있는 화풍은 후대 인상파 화가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인상파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부댕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화가 중 한사람인 모네는 훗날 "내가 한사람의 화가가 되었다면
그것은 모두 외젠 부댕의 덕분이다."라는 말로 그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을 표하였다.
평생 약 3,000점의 판화를 남긴 홀라르(Wenceslaus Hollar 1607. 7. 13~1677)는 세밀한 묘사와
더불어 사실성 있는 작품들을 선보이며 동시대 생활상을 가감 없이 보여준 뛰어난 판화가로서 평가받고 있다.
1627년 부터 프랑크푸르트에서 판
화가이자 출판업자인 마테우스 메리안에게 판화를 배웠다.
1633년 쾰른을 거쳐 영국에 정착한 홀라르는 1666년의 대화재 이후의
런던의 풍경(Views of London)을 비롯해 17세기 영국사회의 생활상을 수많은 책의 지면을 빌어 남겼으며
오늘날 그가 남긴 기록들은 중요한 사료로서 전문가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론과 설계면에서 근대 건축을 주도한 인물인 바그너(Otto Wagner, 1841.7.13~1918.4.11)는
실용적인 양식을 제창한 유럽 근대건축운동의 창시자이며 지도자로 꼽힌다.
아르 누보 양식의 빈 고가전철, 지하철 철도역(1894~97)과 우편저축은행(1904~06) 등 주요작품에는
건축의 양식은 실용목적·재료·구조·미적 입장에서 규정된다는 그의 견해가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우편저축은행 중앙 홀의 곡선 유리지붕은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현대 건축사에서 하나의 이정표로 인정받고 있다.
1895년 그의 강의내용을 담은 ‘현대 건축(Moderne Architektur)’이 출판되었으며
그의 건축관은 J.올브리히, J.호프만 등의 후계자에 의하여 근대 건축사상 중요한 혁신적
예술운동인 제체시온(Sezession: 分離派) 운동으로 발전해 나갔다.
러시아의 스몰렌스크 출생의 프랑스 조각가 자킨(Ossip Zadkine, 1890.7.14~1967.11.25)은 파리파(派)에 속하는 인물로
그의 작품은 매우 독창적이고 자유분방한 형태를 특징으로 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편이다는 평을 받는다.
일찍이 입체파의 영향을 받았으나, 니그로 조각이 갖는 단순성과 활력있는 작품에 영향을 받아 러시아인
본연의 환상미와 원시성을 변형한 작품에 주력하기도 하였다.
독학으로 조각을 공부한 끝에 현대 조각에 독자적인 지위를 확보한 그는 오르페(1949), 파괴된 도시(1951),
폐허 로테르담을 위한 기념상(1953), 고흐상(1961) 등의 작품을 남겼다.
렘브란트 반 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7.15~1669.10.4)은 레이덴의 부유한 제분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26살의 나이에 네덜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만인의 가슴에 감동을 안겨주는 화가로 기억된다.
신생 독립국 네덜란드 공화국의 번영을 이끄는 중심 도시이자, 상인과 작가와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무역왕국의 중심지였던
암스테르담에서 렘브란트는 명성을 떨쳤다.
유화, 소묘, 에칭 등에 통달했던 렘브란트는 초기 시절부터 천재란 칭호를 들었던 그의 그림은 화려한 붓놀림,
풍부한 색채, 하늘에서 쏟아지는 듯한 빛과 어두움이 특징이다.
초상화와 자화상을 즐겨 그린 렘트란트는 캔버스에 그 사람의 성격을 꿰뚫어 옮기는 놀라운 통찰력의 소유자로 불렸다.
400여년의 기간 동안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는 100여점에 가까운 자화상과
성서화를 통하여 자신의 관찰력을 확인하려 하였고, 인간 얼굴의 표현가능성에 대하여 탐구하는 시험의 장으로 활용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튈프 교수의 해부학 강의 (1632년)”, “돌다리가 있는 풍경 (1637년)”, “야경 (1642년)”,
“세 개의 십자가 (1653년)” 등이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 출생인 사르토(Andrea del Sarto, 1486.7.16~1530.9.28)는 전성기 르네상스의 피렌체파(派)의 대표적 화가이다.
본명은 Andrea d' Agnolo이다.
피에로 디 코시모의 제자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프라바르톨로메오, 미켈란젤로 등의 작품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1518∼1519년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 1세의 초청을 받아 프랑스로 간일과 로마 ·베네치아의 단기간의 여행을 제외하고는
그는 거의 피렌체에서 제작에 몰두하여 피렌체의 산티시마아눈치아타 성당의 전정(前庭) 회랑의 벽화,
특히 '마리아의 탄생, (1514)'과 키오스트로 델로 스칼초(Chiostro dello Scalzo)수도원의 '세례자 요한의 탄생, (1511∼1526)'의
단색조 벽화들, 우피치미술관의 '하르피에스의 마돈나, (1517)'와 같은 걸작을 남겼다.
그의 소묘들은 구도와 기교에서 각각의 그림을 바로 전의 것보다 더 완전하게 만들려는 오직 하나의 야망을 훌륭하게 보여주고 있다.
루이 파스퇴르의 제자였던 칼메트(Albert Calmette, 1863.7.12~1933)는 파리대학과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의학을 수학하고 1890년 보건위생 담당으로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일을 시작하였다.
1891년 인도차이나의 사이공에 파스퇴르 연구소를 설립하고 뱀 독(毒)에 대한 방어 혈청을 발견하였고 1896년 프랑스로 돌아와 릴에
파스퇴르 연구소를 설립해 소장이 되었다.
파스퇴르 연구소에 재직하면서 칼메트는 페스트를 박멸하였으며, 북
프랑스 지방 탄광에 만연하였던 구충증의 예방과 더불어 C.게랭과 함께 BCG를 발견하여 결핵에 대한
예방접종법을 확립하여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였다.
그가 발견한 무독성 균주에 의한 결핵예방법은 오늘날 까지도 널리 이용되고 있다.
한국 최초의 원자로인 트리가는 미국의 제너럴아토믹사(社)가 공급한 한국 최초의 연구용 원자로이다.
1959년 7월 14일 한국원자력연구소가 있던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
동(孔陵洞)에서 기공해 1962년 3월 첫 임계에 도달하면서 가동을 시작하였다.
정식 명칭은 트리가마크 Ⅱ로, 열출력은 처음에는 100㎾였으나, 1979년에 250㎾로 증강하였다.
원자력 관련 교육훈련, 중성자 빔을 이용한 물성 연구, 방사성동위원소 생산, 방사화 분석, 방사선 응용연구,
육종개량, 중성자 회절연구 등 원자력 이용기술 개발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주로 활용되었다.
트리가마크 Ⅱ는 1996년 5월에 가동이 중지된 뒤 7월에 폐지되어 공릉동 옛 한국원자력연구소 부지에 기념관이 있다.
트리가마크 Ⅱ가 우리나라 최초의 연구용 원자로였
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는 고리 1호기로 1978년에 상업운전을 시작하며 원자력시대에 발을 내딛었다.
Atom Bomb이라 불리는 원자폭탄(原子爆彈)은 플루토늄이나 우라늄처럼 원자번호가 큰 중원소의 원자핵이 분열할 때
갑자기 에너지를 방출하는 것을 이용해 엄청난 폭발력을 내는 무기이다.
최초의 원자폭탄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에서 이른바 맨해튼 계획(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이루어진
미국의 원자폭탄제조계획)에 따라 만들어졌다.
플루토늄을 이용한 원자폭탄 1개를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 주의
앨버커키에서 남쪽으로 193㎞ 떨어진 지점에서 실험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전쟁에 실제로 사용된 최초의 원자폭탄은 우라늄으로 만든 것이었다.
미국은 이 폭탄을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廣島]에 떨어뜨렸다.
TNT 2만t의 위력과 맞먹는다고 발표된 이 원자폭탄은 34만 3,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이 도시의 심장부 10.36㎢를 순식간에 완전히 폐허로 만들었다.
미국 최초로 지구궤도를 선회한 비행사로 기록되는 글렌(John Herschel Glenn, 1921.7.18~)은 1
943년 해병대 직속의 항공부대에 입대해 한국전쟁동안 90회의 비행작전을 수행하였다.
1954년에 시험조종사가 되었고 1959년 중령으로 진급했다. 그해 머큐리 계획을 위해 뽑은 7명의
우주비행 훈련사로 뽑히게 되는데, 훈련사 가운데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었다.
미국 최초의 무궤도 우주비행을 한 앨런 B. 셰퍼드 쥬니어와 버질 I. 그리솜의 보조비행사로 일하다가
궤도비행을 할 비행사로 뽑혀 1962년2월 20일 우주선 '프렌드십 7호'를 타고 플로리다 주 케이프커내브럴을 출발했다.
고도 약 159~261㎞에서 지구궤도를 3회 돌고난 뒤 대서양의 바하마 근처에 착수(着水)하며 성공적인 지구선회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노벨평화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남아공 민권운동가 만델라
템부족(族) 족장의 아들로 태어난 만델라(Nelson Rolihlahla Mandela, 1918.7.18~)는 1940년 포트헤어대학 재학 중
시위를 주동하다 퇴학당한 뒤 1944년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청년연맹을 창설하였다.
1952년 비백인(非白人)으로서는 처음으로 요하네스버그에 법률상담소를 열고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인종격리정책을
뜻하는 아프리칸스어) 반대운동에 나서는 등 본격적으로 흑인인권운동에 참가하였다.
1952년과 1956년 두 차례에 걸쳐 체포되었으며, 1960년 3월 샤프빌 흑인학살사건을 계기로 평화시위운동을 중단하고
무장투쟁을 지도하다가 1962년 다시 체포되어 5년형을 선고받았으며, 1963∼1964년 범죄혐의 추가로 재판을 받고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1979년 옥중에서 자와할랄네루상(賞), 1981년 브루노 크라이스키 인권상, 1983년 유네스코의 시몬 볼리바 국제상을 받았으며,
1990년 2월 석방 때까지 27여 년 간을 복역하면서 세계인권운동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1991년 7월 ANC 의장으로 선출된 뒤 실용주의 노선으로 선회하여 드 클레르크의 백인정부와 협상을 벌여 3
50여 년에 걸친 인종분규를 종식시켰다. 이러한 공로로 1993년 드 클레르크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받았으며,
1994년 5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참여 자유총선거에 의하여 구성된 다인종 의회에서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대담한 윤곽선을 특징으로 비대칭 구도와 길쭉하게 잡아 늘여 단순화된 형태로
표현한 인물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묘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
에콜 드 파리의 뛰어난 작가로서 평가받는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7.12~1920)는
시인적 자질이 풍부한 감성적인 화가로서 섬세하고 우아한 표현을 통해 이탈리아적 개성을 마음껏 보여주었다.
르네상스 시대 시에나 유파의 그림을 통해 자신만의 미술세계를 구축한 모딜리아니는
파리에 머물며 세잔, 피카소 등의 영향을 받아 독창적인 작풍(作風)을 수립하였다.
자신의 작품 속에 애수와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탁월한 제주를 지녔던
모딜리아니는 탁월한 데생력을 바탕으로 특색 있고 표현력이 풍부한 초상화와 누드화들을 많이 남겼다.
우표와 함께 떠나는 시간여행 (0) | 2010.07.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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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와 함께 떠나는 시간여행 (0) | 2010.07.20 |
한국의 대표음식 김치가 국제규격식품으로 인정된 기념우표 시간여행 (0) | 2010.07.05 |
우표와 함께 떠나는 시간여행 (0) | 2010.07.05 |
우표와 함께 떠나는 시간여행 (0) | 2010.0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