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다부동 전투 전적비 기념관
6월 호국보훈의 달에 월남참전전우회에서
전적지순례길에 부부동반으로 참석하는데
나도 남편을 따라서 칠곡다부동전투 전적지를 방문하였다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꼽히는 전투로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에서 전투를 벌인 끝에
조선인민군의 대공세를 저지시키고 대구로 진출하려던 세를 꺾었는데
당시 북한군 24,000과 한미 연합군 10,000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구국용사충혼비
여기 자유의 제단에 조국위해 목숨바친 영웅을 모셨노라는
글과 함께 서있는 비앞에서 우리는 묵념을 하였다
1950년 6·25 당시 경북 칠곡군 다부동 일대에서 있었던 전투.
낙동강방어선 전투 중의 하나이다.
이 지역 방어를 담당한 국군 제1사단은 보충받은 학도병 500여 명을 포함,
7,600여 명의 병력과 172문의 화포 등 열세한 전투력을 극복하면서
공산군의 이른바 8월 총공세를 저지하여 대구를 고수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미 제1기병사단과 임무를 교대하였다.
미 제1기병사단은 공산군의 9월 공세로 한때 국군 제1사단이 사수했던
다부동일대의 주저항선을 적에게 붕괴당하였으나
인천상륙작전과 더불어 개시된 낙동강방어선에서의 총반격으로 다부동을 탈환하였다.
우리는 기억해야한다
Freedom is not free
낙동강 최후의 방어선
승리를 위해 죽음을 맞이한 용감한 이들의 혈투
다부동 전투
다 헐은 전투화와 물통등이 전쟁의 상흔을 알려주는 것 같다
구국 경찰 충혼비
전적관 앞뜰에 전시되어 있는 군수품들
국군 제1사단은 유학산∼다부동∼가산선에서
북한군 3개 사단의 집요한 공격을 끝까지 저지 격퇴함으로써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또한 다부동 방어전투를 승리하게 된 배경에는 미 제8군의 적절한 예비대 투입도 큰 기여를 했다.
마침내 8월 20일 적은 더 이상 다부동 전선을 돌파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유학산 정면을 공격했던 제15사단을 영천 방면으로 전환했고,
이로써 8월의 다부동 위기는 해소되었다.
다부동 전적 기념관에 대한 해설판
구국의 정신과 평화의 소중함을 널리 깨닫게 하기 위해
왜관지구 전투와 다부동전투에서 사용된 유물은 물론,
다양한 6•25전쟁 관련 물품과 야외 전시장의 전차들과 로켓포인가
동양의 베르됭 전투"라고도 불리는 다부동전투
행정구역 명칭이 '다부동(洞)'이 아닌 '다부리(里)'이지만
'다부동 전투'라 불리는 이유는 경상북도에서는
원래1988년까지 읍면의 하위 행정구역 단위로 '리'가 아닌 '동'을
사용했기 때문이라는데
오늘 월남참전전우회 회원들과 함께 방문을 하면서
다시는 이땅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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