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철강왕, 카네기 재단 설립
"나는 정신적 삶을 고양시키는 일에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그것은 사회와 나누는 일이다.
재산을 안고 죽는 사람은 천국에서 명패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 앤드류 카네기 미국의 산업자본가로 “철강왕”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카네기(Andrew Carnegie, 1835.11.25∼1919.8.11)는 1901년 1월 4일 매각대금을 모두 털어서 카네기재단을 세웠다.
그는 1902년 워싱턴카네기협회를 시작으로 카네기홀, 카네기멜론대 등 20여 개의 자선 및 교육 및
문화사업을 벌이면서 18년 여생을 살았다.
카네기재단은 직접 지원보다는 빈자들에게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방식을 택했다.
음식을 나눠주기보다는 비료를 제공하고 도서관을 지어주는 식이었다.
그는 “자선은 자비가 아니다”라는 철학에 충실했다.
카네기의 자선활동은 부를 이룬 노력을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기에 가능했다.
카네기나 존 D 록펠러 등 당시 이름난 자선활동가들은 산업독점에 대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미국 산업화의 일등 공신이라는 사회적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기업가들이었다.
카네기재단(Carnegie Trust)은 크게 뉴욕카네기재단(Carnegie Corporation of New York
- 미국인 및 영국연방 주민 간의 지식보급과 이해의 증진을 목적으로 함)과 워싱턴 카네기 협회(Carnegie Institution of Washington
- 조사, 연구, 발견 등 인류의 복지향상을 위한 지식의 응용을 장려할 목적으로 주로 자연과학 분야를 원조),
카네기 교육진흥재단(Carnegie Foundation for the Advancement of Teaching - 교육진흥을 목적)으로 나뉜다.
중국인민지원군, 서울 함락 - 1.4후퇴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하순 38선 일대까지 남하한 중국인민지원군과 북한군은
12월 31일 자정을 기해 일제히 38선을 향해 총공격을 개시했다.
이때 동원된 적의 병력은 중국군 17만명, 북한군 6만명으로 집계 되었다.
정부는 이에 앞선 12월 24일 '서울시민 피난령'을 발표했고, 12월 말까지 서울 시민 중 약40%가 피난을 했다.
그리고 1951년 1월 4일, 이른바 '1·4후퇴'인 이날 정부는 부산으로 후퇴했고 유엔군도 서울철수를 완료함으로써
서울은 중국인민지원군에게 장악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작전으로 3월 18일 서울에 재탈환 하였다.
IR52 장영실상 제정
IR52 장영실상은 우리기업과 기술연구소에서 개발한 우수신기술 제품을 선정ㆍ
포상함으로써 기술개발자의 사기를 높이고, 수상제품과 기업에 대한 언론홍보를 통해
초기시장진출 기반을 조성하기 위하여 1991년 1월 4일 최초로 제정되었다.
우리의 과학기술문화가 찬란한 꽃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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