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도 크게 인기를 끌었던 소설 '장미의 이름'은
중세 이탈리아 수도원에서 벌어진 일련의 살인 사건을 다룬다.
교황과 황제의 복잡한 권력 다툼, 여기에 다시 수도회와 교황 사이의 다툼이 주 소재다.
주인공 윌리엄 신부는 알력을 빚고 있는 두 수도회에 중재자로 나서고 그때 등장한
주 요리가 놀랍게도 고급 요리가 아닌 블러드 푸딩이다. 이 요리는 알력 당사자의
소울 푸드였고, 이를 통해 대립각을 세우고 있던 이들이 화합의 잔을 든다.
블러드 푸딩이란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순대라고 보면 된다.
돼지 창자에 피와 잡고기, 귀리와 보리 같은 곡물을 넣고 만든다. 한국의 피순대와 닮았다.
한국 순대를 외국에 소개할 때 어렵게 할 필요 없다.
코리안 블러드 푸딩이라고 하면 서양 친구들은 대개 알아듣는다.
그런데 농림축산식품부에서 펴낸 '한식메뉴 외국어표기 길라잡이'에는 순대를 'sundae'라고 쓰고,
영어로는 'korean sausage'라고 했다. 이는 요리의 물성을 잘 모르고 번역한 것이다.
소시지는 고기와 지방이 주재료다. 반대로 우리 순대는 피와 채소, 곡물만 들어가니
서로 다른 요리인 셈이다. 블러드 푸딩이라고 하면 더 잘 알아들을 텐데….
블러드 푸딩은 영국 북부에서 주로 먹는데, 그 때문인지 호주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흔한 요리는 아닌 것 같다. 아마도 피가 들어가는 까닭일 것이다.
피는 영어권 사람들에게는 만만한 요리 재료가 아니다. 그렇지만 라틴에서는 다르다.
스페인의 흔한 타파스 메뉴 가운데 모르칠라가 있다. 이게 바로 피순대, 즉 블러드 푸딩이다.
파리의 겨울 음식으로는 부댕 누아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 역시 블러드 푸딩과 비슷하다.
뜨겁게 쪄서 겨자를 쳐서 먹는 게 보통이다.
몽골은 우리나라에 많은 것을 전파했다. 순대를 둘러싼 역사도 몽골과 서양, 그리고 우리나라가 있는 듯하다.
유럽의 소시지와 살라미가 몽골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꽤 설득력이 있다.
한국의 순대도 그런 역사적 순환관계에 있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아주 흥미로운 추론이다.
살라미는 저장성이 제일 중요한 음식이다. 몽골의 음식문화와 일치한다. 장거리 원정전투를 한 몽골은
가볍고 저장성이 좋은 전투식량이 많이 필요했다. 그중 최고의 전투식량은 살아 있는 말의 피였다는 얘기도 있다.
말의 정맥을 칼로 자르고, 입으로 빨아 먹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최악의 순간에 먹은 식량이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미리 준비한 음식이 많았을 터. 그중 하나가 바로 게데스라고 부르는 살라미였다고 한다.
살라미는 수분이 거의 없어 잘 상하지 않는다. 게다가 껍질에 있는 곰팡이가 오히려 보존성을 높여준다.
유럽에 있을 때 오래된 가문의 집에 방문하면 지하 저장고에 와인과 여러 가지 동물의 기름,
고기 말린 것들이 있었고 천장에는 주렁주렁 살라미가 곰팡이를 뒤집어쓴 채 걸려 있는 장면을 종종 보곤 했다.
건조한 몽골의 기후에서는 살라미를 상하지 않게 말릴 수 있었을 것이다.
유럽의 지하 저장고도 건조하고 서늘한, 그런 기후를 제공한다. 그렇게 말린 살라미는
겨울이 지나고 봄부터 먹었다. 그 살라미를 썰어 빵에 얹어 먹던 기억이 난다.
'장미의 이름'에 피순대가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나는 수도회에 직접 가서 그런 순대를 질리도록 먹은 적이 있다.
소설에도 나오는 프란체스코파의 수도회였다. 토스카나 산속에 조용하게 자리 잡은 수도회에
피정(避靜·일상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묵상과 침묵기도를 하는 종교적 수련)을 갔다. 그런데 음식이 정말 특이했다.
소설 속의 묘사처럼 와인이 많이 나오고, 요리는 대부분 말린 살라미 소시지와 순대였다.
점심과 저녁에 연속으로 그런 요리가 나왔다. 하루 이틀은 맛있게 먹었는데,
사흘째부터는 순대만 보면 비위가 상했던 추억이 있다.
중국에도 순대가 있다. 라창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순대보다는 살라미에 가깝다.
홍콩에 가서 이 살라미에 달콤한 황주(黃酒)를 잔뜩 마신 적이 있다. 술안주로 아주 좋다.
그런데 먹는 방법이 특이하다.
식당 한쪽에 걸어둔 라창을 서너 개 뚝 끊더니 밥하는 솥에 넣고 쪘다. 달달한 간장에 찍어 먹는데,
기름진 라창이 살살 녹았고, 술은 정말 술술 들어갔다. 홍콩의 딤섬집에서도 판매하니
여행 가면 잊지 말고 한번 주문해 보길 바란다. 저장성에서 만든 걸 고급으로 친다.
태국에도 싸이크록 이싼이라고, 중국의 라창과 비슷한 요리가 있다.
쌀을 넣은 것이 특이한데 매운 고추와 함께 먹는다.
고수를 곁들이는 게 보통이다. 이것 역시 맥주 안주로 그만이다.
연남동에 있는 '툭툭누들타이'라는 집에서도 파는 걸 봤다.
우리 역사에는 언제 순대가 등장했을까. 순대라는 용어는 1800년대 후반에 나온 요리책인 '시의전서'가 최초다.
도야지순대라는 말이 나온다. 그렇다고 우리가 순대를 안 먹었던 것은 아니다. '규합총서'나 '증보산림경제' '
음식디미방'에도 순대 같은 요리가 등장한다. 돼지뿐 아니라 소나 개의 창자도 썼던 것으로 봐
지금의 단순한 순대보다 더 다채로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순대는 몽골 전래설이 우세한데, 그렇다고 확실한 증거도 없다.
가축 창자에 피와 고기, 여러 가지 잡물을 넣어 먹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발상이 아니므로
자연스레 생겨났을 것이라는 설도 설득력 있다. 무엇이 원조이든 우리가 지금 먹는 순대는 원조와는 많이 다르다.
우리가 지금 먹는 순대는 몇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이북식이라고 하는 아바이순대, 서울 시장식의 당면순대,
제주식 수애(순대의 사투리), 안성에서 유래해 용인에서 유명해진 백암순대 등이 있다.
그런데 우리 음식 문화가 흔히 그렇듯이 이런 역사가 정리된 것이 없어서 대개 속설로 그친다.
아바이순대라는 것도 어떤 새터민 출신 인사는 함경도 쪽에서 그런 순대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아바이순대는 함흥비빔냉면처럼 함경도 출신 인사들이 고향을 그리워해서 만들어 먹되,
남한식으로 재해석한 음식이 아닌가 여겨진다. 지금 함흥에는 회를 얹은 비빔냉면이 아니라
감자전분으로 만든 물냉면만 있는 것처럼.
어쨌든 순대는 서민의 음식이라는 공통점은 있는 듯하다. 서울 시장식인 싸구려 당면순대의 등장은
더욱 싼값에 순대를 즐길 수 있게 해줬다. 옛날에는 그나마 대파와 마늘, 당근 등속이 점점이 들어가 있었는데
요즘은 당면이 99%에 달한다. 돼지 피도 거의 넣지 않는다. 공장에서 일괄해서 만든 제품을
너도나도 받아 쓰기 때문에 집집마다 제조방식을 달리해서 맛도 달랐던 옛 추억은 스러져 간다.
참 쓸쓸한 순대의 역사다.
어려서 서울 변두리의 시장에는 뽀얀 김이 오르는 곳에 사람들이 몰렸다. 하나는 떡전이요, 다른 하나는 순대골목이었다.
버젓한 가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난전에 사과 궤짝 수준의 판자를 펴고 순대를 썰어 팔았다.
반드시 뜨끈한 국물을 곁들여 줬는데, 채소전에서 팔다 남은 배추 시래기가 주로 들어갔다.
된장을 풀어 끓인 국물 한 그릇이면 소주가 한 병이었고, 아줌마가 다른 손님에게 팔기 위해 썰다가 남은
순대꽁지를 슬쩍 집어 덤으로 얹어주던 접시에 또 소주 한 병이었다. 시장 밖에는 삭풍이 불었고
우리들 마음도 다 함께 춥던 때였다. 아버지들은 겨우 도시락 가방을 들고 출퇴근하던 시절이었으니,
넉넉한 소주 안주가 무에 있었으랴.
언젠가 순댓집 좌판에 앉아 소주를 마시던 아버지의 굽은 등이 또렷하게 살아난다.
아버지 등에서는 담배 냄새와 함께 막 썰어놓은 구수한 순대 냄새가 났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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