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명절, 설
한해의 첫날을 일반적으로 `설` 또는 `설날`이라고 불러왔다.
설날 아침에는 일찍이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차례를 지낸 다음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린다.
각 가정에서는 차례에 쓰고 세배 온 사람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여러가지 음식을 만드는데
이를 세찬이라 하며, 그 중 흰떡은 빼놓을수 없는 음식이었다.
흰떡은 절구질로 빻은 쌀가루를 반죽하여 시루에 찐 다음 안반에 넣고 떡메로 쳐서 만들었다.
1985년 우정당국(당시 체신부)은 설날을 맞아 설명절의 대표적 음식인
흰떡을 만드는 절구질을 소재로 우표로 발행한 바 있다.
제1회 국제관세의 날
1983년 1월 26일은 제1회 국제 관세의 날이다.
우리나라가 제안하여 1981년 6월 관세 협력 이사회 총회에서 채택된 국제 관세의 날은 세계 무역 증대에 기여하는
관세 행정의 중요성을 일반에게 널리 알리고 국가간의 관세 협력을 촉진하기위한 목적으로 지정된 것이다.
관세 협력 이사회는 관세 제도의 국제적 표준화와 간소화를 통해 세계 무역을 증대시키기 위하여 1953년 설립되었는데,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한 159개국 국가가 가입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1968년 7월 56번째로 관세 협력 이사회에 가입한 이래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한편,
이를 통하여 국제적 표준 관세 제도를 받아들임으로써 관세 행정의 국제적 표준화를 도모하여 왔다.
현재 수출입 업무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관세율표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1984년 관세 협력 이사회 연차 총회를 서울에서 열도록 유치하는 등 관세 행정 분야에서
선진국으로서의 지위를 다져 가고 있다.
관세 행정이 발전되어 국제 무역을 증진시키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각국간의 적극적인 협력과 이에 종사하는 관세인의 끊임없는 개선 의지는 물론,
일반 국민의 이해와 협조가 있어야 할 것이다.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 맥아더 장군
태평양전쟁의 영웅이자 6·25전쟁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
맥아더장군(MacArthur, 1880.1.26 ~ 1964). 그는 군인 집안에서 태어나 웨스트포인트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였으며
1930년 대장으로 진급, 육군 참모총장을 지내며 육군의 개혁과 더불어 전력증강에 주력하였다.
1937년 퇴역 후 태평양 전쟁의 발발과 더불어 미국 극동군사령관으로 다시 복귀한 맥아더장군은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고
전세를 유리하게 반전시키며 승리로 이끌었다.
1944년 12월 육군 원수로 승진됨과 동시에 이듬해 태평양지역 미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맥아더장군은
1945년 9월 2일 도쿄만 미 해군전함 미주리호 함상에서 열린 역사적인 항복 조인식에 승전국의 대표로 참석했다.
1945~51년에 일본 점령 연합군 사령관으로 재직하면서 일본의 무장해제와 군국주의자들의 제거,
경제복구 등에 힘썼던 그는 1950년 6.25전쟁의 발발과 더불어 다시 한 번 전장의 지휘자로 나서게 되었다.
UN군 최고사령관으로 부임한 맥아더장군은 불리한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하여 적진의 한 가운데를 파고드는
인천상륙작전을 과감히 성사시켜 전쟁의 판도를 한 번에 뒤집어 놓았다.
압록강까지 적군을 몰아낸 장군은 중공군이 참전하자 중국본토를 폭격해야한다는 적극적인 공세를 주장하였으나
트루먼 대통령과의 대립으로 1951년 4월 사령관의 지위에서 해임되었다.
귀국 후 맥아더 장군은 상, 하원에서 열린 해임청문회 자리의 연설문에서 ‘노병(老兵)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며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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