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비행사 린드버그
1927년 한 젊은 비행사가 단독으로 대서양을 건너는 횡단비행에 성공하였다.
뉴욕을 출발하여 33시간 여 만에 프랑스 파리의 르부르제 공항에 안착한 것이다.
이 성공으로 말미암아 미국의 비행사 린드버그는 최초의 대서양횡단 무착륙단독 비행을 성공시킨
항공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미네소타 주 리틀享봇� 워싱턴 D.C에서 소년기를 보낸 그는 1924년 육군 항공비행학교에서 비행술을 배웠다.
그 후 우편비행기의 비행사로서 생활하던 린드버그는 2만 5,000달러 상금이 걸린 당시까지
그 누구도 성공시키지 못했던 이 비행을 완벽하게 해낸 것이다.
국민적인 영웅이 되었지만 그의 유명세만큼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멕시코 주재 미국 대사 드와이트 모로의 딸인 앤 모로를 만나 1929년 5월에 결혼해 행복한 생활을 누렸던 그였지만
1932년 3월, 2살 된 아들 찰스 가 그들의 집에서 유괴 살해당하는 비극을 맞이한 것이다.
평소 그의 명성에 대한 심한 부담감을 않고 있던 린드버그는 이 사건 이후 모든 것을 버리고 유럽으로 떠났다.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그는 2차 대전이 발발하자 미국으로 돌아와 고문 자격으로 태평양에서 임무여행을 하는 동안
50회의 전투비행을 했으며 전쟁이 끝난 뒤에는 가족들과 함께 코네티컷과 하와이에서 조용히 살았다.
미국항공자문위원회의 일원으로서 미국정부와 민간항공회사에 수많은 자문을 하였으며
정부에 대한 공로로 1954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에 의해 공군 예비역준장으로 임명되는 등 많은 훈장과 상을 받았다.
1953년 그의 대서양 횡단비행을 서술한 ‘스피리트 오브 세인트 루이스(The Spirit of St. Louis)’로 퓰리처상을 받기도 하였다.
프랑스의 공학자 아데르
보기 드물게 독학으로 성공한 공학자이자 발명가인 아데르.
소년기부터 비행에 관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항공기 제작과 전기통신 분야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하였다.
1870년 자신이 직접 제작한 기구를 시작으로 기존의 열기구와는 다른 엔진을 이용한 비행체의 개발에 몰두하였다.
1890년 증기를 동력으로 하는 단엽기 '에올레'를 만들어 시험비행에 성공하였다.
이 시험비행의 성공은 무거운 비행체가 자체의 동력으로 이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최초의 것으로
라이트 형 제 이후 비행기 발달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발족
1965년 5월 박대통령이 미국방문시 존슨 미국대통령과 만나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의 진흥이 무엇보다 필요 하다는데 합의한 후 미국정부의 지원 하에 1966년 2월 재단법인으로 설립되었다.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과학분야의 연구 및 기술개발을 목표로 노력해온 한국과학기술연구소는
그동안 창조적인 산업기술개발을 통하여 공업 현대화를 뒷받침하고 기초ㆍ응용과학 연구와
국내외 연구기관ㆍ학계ㆍ산업계와의 협동연구를 수행하여 경제성장과 과학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오늘날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중추적인 연구기관으로 성장하였다.
또한 KIST는 21세기 고도산업사회에 대비하고자 미래 원천기술과 기초연구,
공공복지기술 개발에 연구역량을 결집하고 있으며,
우수 연구 집단의 육성, 연구프로그램의 세계화를 통하여 독창적인 연구성과를 창출하는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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