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항복문서 조인
1945년 9월 2일 일본 도쿄만에 정박한 미국 태평양함대 기함인 미주리호 선상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를 인정하는 일본의 항복문서 조인식이 열렸다.
전 국민의 옥쇄라는 비장의 각오로 최후의 결전을 주장하였던
일본 군부는 히로시마에 이어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의 충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기나긴 전쟁의 종지부를 이날 찍게 되었다.
8월 15일 일왕의 항복 선언에 이어 이루어진 항복문서 조인에는
연합군 대표로 맥아더 연합군 총사령관,
일본대표로 우메즈 대장과 시게미스 외무장관의 서명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로서 인류의 대 재앙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은 완전히 끝났다.
항복 후 연합군의 통치를 받은 일본은 우리나라의 6.25전쟁을 경제부흥의 발판으로 삼고
1951년 9월 연합국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주권을 회복하였다.
안중근 의사 태어남
황해도 해주 출신인 안중근(安重根, 1879.9.2 ~ 1910.3.26)의사는
을사늑약 이후 삼흥(三興)학교를 세우는 등 인재양성에 힘쓰는 한편
독립군의 일원으로 만주 등지에서 항일운동에 전념하였다.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합법적인 투쟁이 무의미함을 실감한
안중근 의사는 1909년 동지 11명과 죽음으로써
구국투쟁을 벌일 것을 손가락을 잘라 맹세하고 단지동맹을 결성 본격적인 항일 투쟁의 길에 들어섰다.
동지 우덕순(禹德淳) 등과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 암살계획을 세우고
1909년 10월 26일 일본인으로 가장하여
하얼빈역에 잠입, 거사를 성공시켰다.
삼엄한 경비 속에 도착한 이토를 사살하고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 타이지로 등에게 중상을 입히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이듬해 2월 사형 선고에 이어 3월 26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영국의 화학자 소디
서식스주 이스트본에서 출생한 소디(Frederick Soddy, 1877~1956)는
옥스퍼드대학교를 졸업하고 동 대학의 교수를 지냈다. 캐나다의 맥길대학교에서 E.러더퍼드와 함께
방사능에 관하여 연구하였던 그는 1903년 종전까지의 정설로 여겨졌던 원자의 불변성을
부정하는 방사성붕괴설을 수립하였으며 W.램지와 함께 원소전환을 처음으로 실험에 의해 증명하는
라돈 Rn에서 헬륨 He의 생성과정을 밝혔다.
또한 방사성붕괴에 따르는 원소의 변위법칙, 즉 α붕괴·β붕괴에 따른 원자번호의 변화법칙을 찾아내
최초로 동위원소의 존재를 밝히는 데 성공하였다.
소디의 동위원소 발견은 현대의학 및 공업 분야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1921년 소디의 방사성동위원소에 관한 연구 업적을 인정해 노벨화학상이 수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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