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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정조대왕 능행차연시와 장용영 수위의식

여행,사진방/축제와 행사

by 그린체 2011. 4. 1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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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 주관

수원화성 대한민국 관광 으뜸명소로  선정된

2011 화성행궁 상설한마당에서  반가운 사람 정조의 꿈이라는 주제로

수원화성에서 열린 가슴에 새기는 문화로  

역사적 숨결이 깃든 대표적인 축제인

정조대왕 능행차 연시와 장용영 수위의식을 보았다

 

 

정조대왕 능행차 연시

 

 

 

210여전 정조대왕능행차 연시가 경기 수원시에서 재연됐다.

조선조 제22대 정조대왕이 부왕 사도세자의 원침참배를 위해 행차하던 모습을

역사적 고증을 통해 다시 선보이는 국내 최대 가두 퍼레이드로
정조대왕의 능행차연시 행사이다

 

 

 

 

 

정조대왕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가마

 

1795년(정조 19년)의 현륭원 방문은 각별한 뜻을 지니고 있었다.

이 해가 을묘년이므로 ‘을묘원행’이라고 불리는 이 행차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경축하기 위한 나들이기도 했다 

 

 

 

 

 

노란의상을 입은 가마꾼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정조대왕의 능행차연시에 나타난 일반 백성들의 모습

재현되는 모습을 보며 정조 임금의 인간미를 알 것같다

 

 

 

 

 

정조대왕께서는 행행 중에 3,355건의 상언이나 격쟁을 처리하셨다고 한다

 상언이란 백성들이 임금을 직접 만나 억울한 일을 호소하는 것이고

격쟁은 행차 중에 징을 치고 나와서 왕에게 억울한 일을 호소하는 것이다.

 

 

 

 

 

임금의 뒤를 따르는 병조판서 -지금으로 치면 국방장관

 

 

 

 

 

장용위 정조의 친위부대 깃발

 

 

 

 

 

정조임금의 용무뉘가 있는 임금의 깃발

 

 

 

 

 

정조대왕은 1789년에 아버지인 장헌세자의 묘소를 양주 배봉산에서

화산(지금의 화성시)으로 이장하여 현륭원이라 칭하고

해마다 1월 혹은 2월에 현륭원을 참배하였다.

왕의 궁 밖 나들이를 ‘거둥’ 혹은 ‘행행’이라 하는데

능에 가는 행행을 능행, 원(왕의 후궁이나 세자의 무덤)에 가는 행행을 원행이라고 한다.

장헌세자는 왕이 아닌 세자의 신분이었으므로 정조대왕 당시에는

현륭원 방문을 ‘원행’이라 하였다.

 

 

 

 

 

정조가 8일간의 화성행차에서 벌인 행사들은

작게는 어머니의 한을 풀어 주는 효성이고

크게는 자신이 재위 20년간 쌓아 놓은 위업을 과시하고,

내외 신민의 충성을 결집시켜 정치개혁에 박차를 가하려는  정치적 시위이기도 하였다.

 

 


 

장용위 수위의식

 

 

정조대왕의 능행차가 지나가고 나서 장용영수위의식이 치러졌디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의 친위부대인 장용영(壯勇營)의

수위의식과 군례를 관찰하는 행사로

수원의 전통문화를 국제적인 역사, 문화, 관광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한 문화행사로 치루어 진행된다.
엄격한 고증을 통하여 역사적 근거를 확보하였으며,

주말마다 수원의 역사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행사로 진행되어 문화도시에 걸맞는

수준 높은 전통 행사이다

 

 

 

 

 

취타대의 멋진 나팔을 시작으로 펼쳐지는 행사

 

 

 

 

 


장용영 이란 ?

 

장용영은 조선 제22대 국왕 정조가 왕권 강화를 위해

창설한 국왕 직속의 친위부대이다

1785년 졍예의 군사를 선발하여 만든 국왕호위부대 장용위를 확대 개편하여

중앙군영인 훈련도감을 제치고 총병력 12,000명 최대군영으로 육성되었다

 

정조는 이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화성으로 이장한 뒤

현릉원이라 하고 수원에 장용영 소속 병력을 주둔시켜 호위를 전담케 하였으며

1793년에는 수원부를 화성으로 바꾸고

화성에 장용영 위영을 설치하여 군사도시로 육성하였다

 

 

 

 

 

능묘를 참례하고 돌아오는 길에 펼친 호위군 행렬 군사들의

기강과 훈련상태를 점검하는 장용영군사열무의식

 

 

 

 

 

 



장용영은 크게 내영과 외영으로 나누어지는데,

내영은 도성을 중심으로 하였고 외영은 수원 화성을 중심으로 이루어 졌다.

외영제는 수원부를 화성으로 개칭하고 정3품의 부사에서 정2품의 유수로 승격,

장용외사와 행궁정리부의 직을 겸하게 하였으며 그 아래에 판관1인을 두었다.

지휘관인 장용영병방은 장용사(壯勇使) 또는 장용대장으로 개칭하였으며,

그 규모는 12,000여 명이었는데 화성에 5,000명 병사가  주둔하였다고 한다


외영의 편제는 1798년에 크게 개혁되어 오위체제(五衛體制)를 도입하여

장악위(長樂衛)아래에 오위를 두고 각 위를 중심으로 한 정병과

각대를 중심으로 한 성정(珹丁)으로 편성하였으며,

이는 중앙집권적인 오위체제를 도입,

강력한 왕권의 상징으로 삼으러 하였다.

하지만 정조가 죽자 1802년(순조 2년)에 혁파되었다.  

 

 

 

 

 

  

 

 

 

  

 

 

정조대왕 친위부대인 장용영의 수위의식과 군례를 관찰하는 장용영수위의식은

 정조시대 완성된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24가지 실전 무예인 ‘무예24기 시범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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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영 수위의식 순서

 

1.장용군집합 - 남군영군사 출발

2.초염 - 선전관의 지시에 다라 장용영군사들이 성문을 수위형태를 갖추는 절차

3. 중염 - 장용대장이 장용영 군사들에게 수위명령을 하달하는 절차

4. 삼엄 - 병조판서가 국와의 명령을 장용영 군사들에게 하달하는 절차

5. 장용군 집합 - 조총수 궁수 집합

 


개문의식 - 궁성문을 여는 의식(조총수)

국왕행차 - 훈련 친림위해 정조대왕 행차

금엄 - 성문을 열고난 후 성안에 출이하는 모든사람들을 단속하고 통제하는 의식 (조총수

상기례 - 군사들의 훈련시 국왕께 각 군영의 군사들 이 훈련에 참가하여

군영을 상징하는 깃발 을 올림으로 군사훈련에 참가함을 의미하는 군럐의식(궁수)

군례훈련 - 궁수들의 활시범 및 조총수들의 조총시범

폐문의식 - 궁성문을 닫는 의식(조총수)

하기례 - 군사훈련이 끝나고 상기하였던 깃발을 내려 군영으로 돌아가는 의식(궁수)

예필의식 - 모든 행사를 마치고 장용군사들이 배치를 풀고 의식을 끝내는 의식, 퇴장

 

 

 

 

 


수원여행길에 수원화성의 화성행궁에서 펼쳐진

정조대왕 능행차연시와 장용영수위의식을 보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인파가 많아서 사진을 찍기가 힘들었고

정조대왕의 모습을 그려보며 드라마 이산 속의 장면들과 연게하여

재미있는 추억을 쌓았다

 

 장용영 수위의식 : http://jang.shc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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