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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기, 포사, 조비연

교육에 관한 것/역사이야기

by 그린체 2017. 3. 30.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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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商)나라의 마지막 임금 주(紂)의 총애를 받았던 달기(妲己)는 구리 기둥을 불에 잔뜩 달구어 놓고

죄인을 그 위로 걷게 해서 결국 태워 죽이는 포락(炮烙)이라는 잔인한 처형 방식을 창안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주왕과 함께 주지육림(酒池肉林)에서 호화스럽고 방탕한 생활을 즐기다 나라의 몰락을 초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지만 달기에 대한 대부분의 기록은 야사나 소설에서 기인한 것으로 그녀가 실존 인물이었는지,

상나라의 제후국이었다가 왕조를 멸망시킨 주(周)나라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인지,

그것도 아니면 마찬가지 목적으로 주왕의 총애를 받던 죄 없는 미인에게 날조된 혐의를 덮어씌운 것인지

현재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사기(史記에는 주왕이 신하들의 고언은 듣지 않고 달기의 말만 들었으며,

주왕이 자살한 후 달기는 반란군에게 사로잡혀 처형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상(商)을 멸망시킨 주(周)나라 역시 포사(褒姒)라는 여인에 의해 결정적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해서

서주(西周) 시대의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포사는 서주의 마지막 임금 유(幽)의 왕후였다.





유왕은 궁에 들어와서 한 번도 웃지 않은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보고자 거짓으로 봉화를 올렸다.
이를 본 제후들이 사방에서 군사들을 이끌고 허겁지겁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서야 포사는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남자들이 여자가 웃는 모습을 한 번 보기 위해 엄청난 돈을 쓴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천금매소(千金買笑)'라는 사자성어가 바로 이 여인으로부터 유래되었다.

그런데 포사가 망국의 원흉으로 오명을 뒤집어쓴 것은 정말 억울한 일이다. 아무리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 봐도

이 경우에는 천성적으로 내성적인 성격이라 잘 웃지 않았던 포사의 잘못이 아닌 왕후의 웃음을 보겠다고

거짓 봉화를 올린 유왕의 책임이다. 견융(犬戎)이 침입해서 나라가 위기에 빠지자 유왕은 봉화를 올렸다.

그러나 그것이 또 거짓인 줄 알고 제후들이 출동하지 않아 유왕은 허망하게 패했다.


한 고조 유방이 천신만고 끝에 세웠던 전한 왕조를 끝장낸 원흉으로 지목된 미인은 성제(成帝)의 부인이었던

효성황후(孝成皇后) 조비연(趙飛燕)이다. 조비연은 날씬한 몸매의 여인을 칭송할 때 사용하는

작장중무(作掌中舞)'라는 성어의 주인공인데, 이 말의 의미는 사람의 손바닥 위에서도 춤을 출 수 있다는 의미이다.

물 찬 제비'라는 의미의 '비연(飛燕)'은 그녀의 본명이 아니라 별명이다. 조비연은 실제로 내시 두 사람이 들고 있는

수정 쟁반 위에 올라가 춤을 추어 성제를 즐겁게 했다고 한다.


한자로 미인의 스타일을 분류할 때 '연수환비(燕瘦環肥)'라고 하는데, 그 뜻은 조비연과 같이 마르고

연약한 몸매의 미인과 양귀비와 같은 글래머 스타일의 미인을 함께 일컫는 말이다.

비연의 작고 가냘픈 몸매를 입증하는 또 하나의 일화가 있다. 성제가 호수에 배를 띄우고 그 배 위에서 비연이 춤을 췄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자 그녀의 몸이 바람에 날아갔다고 한다. 이때 급히 그녀를 붙잡다가 치마폭이 길게 찢어졌는데,

비연의 이 찢어진 치마에서 한쪽 옆이나 뒤를 길게 트는 치마인 유선군(留仙裙)이 유래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이 일화는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비연이 옥외에서 춤을 추다 다시 바람에 날아갈 것을 염려한 성제는

그녀를 위해서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도 안에서 안전하게 춤을 출 수 있는 누각을 짓고

칠보피풍대(七寶避風臺)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러한 신비의 여인 조비연이 역사가들의 비난을 받는 이유는 그녀의 질투 때문이다.

그녀와 그녀를 따라 입궐한 동생 합덕은 황제의 총애를 받았는데도 아이를 갖지 못했다.

그래서 조비연 자매는 성제의 다른 후궁들이 애를 갖는 것을 심하게 질투했는데,

그 바람에 장차 황제가 됐을지도 모르는 여러 명의 어린 왕자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여기서 역사가들은 조비연 자매가 왕실의 대를 끊어 한나라 왕조를 망친 사악한 마녀라고 몰아세운다.

그렇지만 전한 왕조가 망한 것은 황제의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성제의 외가인 허씨와 처가인 왕씨로 대표되는 막강한 외척 세력들이 권력 투쟁에 몰두했고,

무능한 황제들이 이 투쟁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비연 자매는 명문세가 출신인 다른 후궁들과는 달리 아무런 집안배경이 없는 천한 무희 출신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권력가 출신의 다른 여자가 낳은 예비 황제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아름다운 자매들에게 망국의 책임을 묻는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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