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 등 장류는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이 먹던 음식이다. 삼국시대의 역사서에도 나온다.
콩으로 메주를 만들고 이를 띄워 소금물을 첨가하여 숙성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고추장은 여기에 고춧가루가 들어간다. 단맛을 더하기 위해 쌀, 보리 등의 곡물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고춧가루가 들어간 된장’으로 보는 것이 맞다.
고추는 임진왜란 전후에 우리 땅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고추장이 ‘발명’된 것은 그
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최근 몇몇 학자들이 고추는 임진왜란 시기(1500년대)의
그 훨씬 전부터 우리 땅에 있었으며 고추장도 먼 옛날부터 먹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옛 문헌에 나오는 “초장”(椒醬)을 초피로 담근 장의 일종으로 보았던 기존의 해석을 뒤집어 고추장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주장이 맞다면 우리 민족은 먼 옛날부터 고추장을 먹었을 수도 있지만,
중국과 일본에서조차 고추를 1500년대에 들어온 것으로 기록하고 있어 우리 땅에서만
유독 고추가 오래 전부터 있었다는 주장에 의문이 있기도 하다.
1 순창 고추장이다. 전통적인 제조 방법으로 고추장을 담그면 색깔이 약간 짙다.
2 순창 고추장 민속 마을이다. 1997년에 조성되었다. 고추장 맛은 집집이 조금씩 다르다.
3 고추장용 메주가 매달려 있다. 된장 메주와 달리 둥글게 빚어 말린다.
전북 순창은 ‘고추장의 고장’이다. 그 역사는 길다.
1800년대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에 고추장 이야기가 나오는데,
순창과 천안의 고추장이 유명하다고 적고 있다.
그보다 앞선 1740년대 저작인 [수문사설]에는 순창 고추장의 제조법이 기록돼 있다.
조선 중기에 이미 순창 고추장은 특산품으로 인정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순창에서는 가정집에서 고추장을 담가 아는 사람들끼리 선물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었다.
1980년대 후반에 들면서 우체국 택배 시스템이 만들어졌는데, 이때 전국의 특산품이
직거래 시장을 형성하였고 순창 고추장도 이 택배망을 타고 전국으로 팔려나갔다.
순창 고추장 명성이 높아지자 순창에 식품공장이 들어서 ‘공장 고추장’이
순창 고추장이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일이 생겼다.
현재는 식품 대기업도 순창에 공장을 짓고 ‘순창 고추장’ 브랜드를 팔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드는 순창 고추장 제조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1997년 순창 고추장 민속 마을이 조성되었다.
이 마을에는 40여 가구가 전통적인 방식으로 고추장을 담그고 있는데,
고춧가루와 콩, 쌀 등 모든 재료를 순창의 농가에서 공동구매를 하고 있다.
이 마을 외의 것은 순창 고추장이라 이름을 달고 있어도 ‘순종’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순창 고추장이 맛있는 까닭에 대한 설명은 여러 가지이다.
첫째가 솜씨. 순창 고추장 민속 마을의 고추장 제조자들은 최소한 10년 이상 고추장을 만들어온 경험이 있다.
발효음식에서 경험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둘째가 물. 전국에서 가장 깨끗한 섬진강 상류의 오염되지 않은 지하 암반수를 사용한다.
셋째, 순창의 태양초와 콩 등. 농가와 계약하여 공급받고 있다. 넷째는 제조 시기.
여느 지역과 달리 늦여름에 메주를 띄워 겨울에 고추장을 담근다. 여름에 습기가 많으니 메주가 잘 뜨고,
겨울에 고추장을 담그니 서서히 숙성돼 단맛이 깊고 신맛이 없다. 다섯째는 기후이다.
순창은 분지여서 사계절 습기가 많다. 이 습한 기후가 고추장의 발효균을 활성화하여 맛이 깊어지는 것이다.
고추장은 최소한 8개월 이상 발효 기간을 거쳐야 제 맛이 난다. 공장의 고추장은 이렇게 만들 수가 없다.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숙성 없이 속성으로 만들어진다.
공장의 고추장은 엄밀히 말하면, 고춧가루에 단맛을 더한 ‘고추장 맛 소스’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식품공전]에 공장의 속성 고추장도 고추장이라 표시할 수 있다 하여 포장지에 그리 적혀 있는 것뿐이다.
순창 고추장이 귀한 이유를 딱 하나만 꼽자면 ‘제대로 숙성한 고추장’이란 사실이다.
이름만 고추장인 공장 고추장과는 그 맛의 차원이 다르다.
글·사진/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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