덮밥 - 풍년 기원하며 먹던 음식… 11세기 이후 발달
맛의 세계는 오묘하다. 똑같은 재료라도 먹는 방법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밥에 반찬을 얹은 덮밥은 같은 재료라도
밥 따로 반찬 따로 먹는 것과는 또 다른 맛이다.
그렇기 때문에 밥 문화권인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는 모두 덮밥이 발달했다.
우리만 해도 제육덮밥, 오징어덮밥, 버섯덮밥 등 다양한 덮밥이 있다.
일본도 장어덮밥, 계란덮밥 등 여러 종류의 덮밥인 ‘돈부리’가 있고
중국에도 마파두부덮밥과 같은 ‘거판(盖飯)’이 있다.
특별히 요리라고 할 것도 없는 덮밥에 무슨 역사가 있겠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특별한 날, 소원을 빌며 먹던 음식인데 토지의 신께 풍년을 기원하고
수확을 감사하며 먹었던 음식으로 추정된다.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입춘과 입추 후 닷새째 되는 날인 토지의 신께 제사를 지내는 사일(社日)에 고
기와 채소를 밥에 덮어서 먹는데 이것을 사반(社飯)이라고 했다.
더 자세한 내용이 12세기 중국 문헌인 맹원로의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 나온다.
“돼지고기인 저육(저肉)이나 양고기(羊肉), 혹은 염통, 가슴살, 곱창, 허파,
또는 오이와 생강 등을 바둑돌 모양으로 잘라서 맛있게 양념한 후 밥에 덮는다.
손님을 초청해 나누어 먹는다.”
사반이라는 음식의 구조가 지금의 제육덮밥을 비롯한 각종 덮밥과 크게 다를 것이 없으니
한중일 삼국에서 먹는 덮밥의 뿌리를 여기서 찾아볼 수도 있겠다.
‘속자치통감(續資治通鑑)’에는 11세기 북송 철종 때 수렴청정을 하던
태황태후가 병이 들어 신하들이 병문안을 왔는데 그날이 마침 사일이어서
사반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13세기 남송의 수도인 지금의 항저우 풍경을 묘사한 ‘무림구사(武林舊事)’라는
책에도 사일에 고기덮밥을 나누어 먹는다는 내용이 있다.
왜 토지신께 제사를 지내는 날에 고기덮밥인 사반을 먹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날 조정에서는 관리들에게 보너스로 고기를 나눠 주었던 모양이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한나라 재상으로 건국공신인 진평(陳平)이
이날 관리들에게 고기를 공평하게 분배했다고 하고,
한 무제 때 재상인 동방삭도 사일에 고기를 나누어 주었다고 나온다.
고기를 분배하면서 고기덮밥을 먹은 것으로 보이는데
어쨌든 사반을 먹는 풍습은 중국 송나라 때 정착해 퍼졌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고기덮밥의 뿌리는 깊다.
우리의 경우 조선 초기부터 사반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일본도 돈부리 중 장어덮밥은 19세기,
쇠고기덮밥은 메이지 유신 이후 발달했다고 하지만
14∼16세기인 무로마치(室町) 시대 덮밥과 비슷한 음식이 있었다고 한다.
중국은 7세기 당나라 사람인 위거원이 쓴 ‘식보(食譜)’에
계란과 돼지고기를 얹어 먹는 덮밥의 맛이 특별하다는 기록이 보인다.
진작부터 밥에 각종 재료를 얹어 먹었던 것이다.
물론 사반이 고기덮밥의 기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덮밥의 발달이 사반과 무관한 것 같지는 않다.
지금 우리가 먹는 제육덮밥이나 오징어덮밥도
대충 만들어 먹었던 음식이 아니라 특별한 날,
소원을 담아서 먹던 경건한 음식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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