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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메이지 정권 때의 보신전쟁

교육에 관한 것/역사이야기

by 그린체 2015. 7. 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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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메이지[明治] 정권이 도쿠가와 바쿠후[德川幕府]에 권력의 반환을 요구하자

이에 불복하여 친 에도 바쿠후 세력이 무진년인 1868년 일본 전토에서 벌인 내란 사건.

왕정복고로 성립한 메이지천황의 메이지 정권이 도쿠가와 바쿠후에 권력의 반환을 요구하자

범(汎) 친(親) 바쿠후[幕府] 세력 즉, 에조공화국, 도쿠가와 바쿠후

오우에쓰 열번 동맹등이 이에 불복하여 무진년인 1868년에 일본 전토에서 전쟁을 벌였다.

메이지 신정부군은 아리스가와노 미야타루히토 친왕을 주축으로,

사이고 다카모리, 오무라 마스지로가 지휘관이 되어 규슈의 사쓰마번에서 출발,

북동방으로 공략, 에도[江戶]까지 손쉽게 행군하였다.

바쿠후 측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중심이 되어 이에 대항했으나 패퇴하였다.

한편 기타시라카와노 미야 요시히사 친왕이 핵심인물이 된 호쿠리쿠와

도호쿠지방의 오우에쓰 열번 동맹이 바쿠후 군에 가담하여

신정부군의 북침을 저지하였으나 역시 실패하였다.


 

 

★보신 전쟁(

 

1868년부터 1869년 사이에 도쿠가와 막부의 세력과 교토 어소

정치 권력을 반환하기를 요구하는 세력과의 싸움으로, 일본에서 일어난 내전이다.

 

전쟁은 도쿠가와 막부의 개항에 따른 불평등 조약으로 인한 수많은 귀족들과

젊은 사무라이들 사이에서의 불만에서 기원되었다.

서쪽 번국의 사무라이(특히 사쓰마 번, 조슈 번, 도사 번) 및 법원 관계자들은

황실의 통제와 젊은 메이지 천황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해 나아갔다.

1866년 사쓰마 번조슈 번 사이의 삿초동맹이 체결되자 군사적인 위협을 느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정치 권력을 천황에게 반환하여

도쿠가와 가문의 보존과 미래의 정부에 참여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에도에서 교토 어소측이 군사적인 움직임을 하는 한편

사쓰마 번, 조슈 번, 도사 번을 비롯한 반막부 세력들이

12월 9일 쿠데타를 일으켜 조정을 장악하고,

대정봉환을 계기로 도쿠가와 막부의 폐지와 신정부를 수립할것을 선언했다.

그 결과로, 무진년인 게이오 5년(1868년)에 일본 전토에서 전쟁이 발발한다.

사쓰마조슈를 비롯한 반막부측 군대가 막부측보다 비교적 현대적이었기 때문에

도바 후시미 전투를 서막으로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따낼수 있었고,

결국 에도까지 후퇴한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개인적인 항복을 선언한다.

이후 오우에쓰 열번 동맹군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도쿠가와 가문에 끝까지

충성한 잔당들과 북부 혼슈 세력들은 훗카이도까지 후퇴하여

에조 공화국을 설립했으나, 하코다테 전쟁을 마지막으로 전쟁은

반막부 세력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되고,

그 결과 일본 전체를 걸쳐 메이지 유신을 완료 시킨다.

 

전쟁에서 승리한 반막부 세력의 신정부는 일본에서 외국인들을 추방시키고,

과거에 막부가 외국과 체결한 불평등 조약을 협상하려고 했으나,

 장기적인 근대화 정책을 채택하기 위하여 목표를 포기했다.

사이고 다카모리를 비롯한 신정부의 지도자들은 도쿠가와 충신들에게

관용을 배풀었고,

도쿠가와 막부의 수많은 지도자들에게 신정부의 책임있는 직위를 수여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전쟁은 일본인들에 의해 낭만적으로 묘사되었고,

이 전쟁에서 비롯된 수많은 사상자에도 불구하고

메이지 유신을 "무혈 혁명"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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