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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프라이, 어묵 300년전에도 먹었네

요리 이야기/음식이야기1

by 그린체 2013. 3. 31.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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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관·의관 등 경제력있는 중인들까지 고급음식

즐기게 된 조선중기 음식문화

 

육포나 생선포에 밥 눌러 도시락 소풍 지금의 달걀프라이 별미음식으로 감탄
때는 지금으로부터 300여년 전. 숙종, 경종으로 이어지는 조선 중기다.

사옹원관리 대식가(大食家)는 빠른 걸음으로 저잣거리를 걷는다.

걷는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날래다.

체면도 내다버렸다. '어떤 맛난 것들이 있으려나' 궁금증에 속이 탄다.

사옹원은 궁중의 음식을 맡아 운영하는 기관이다.

총책임자인 제거 아래로 재부, 선부, 조부, 임부, 팽부가 있었다.

종6품에서 종9품까지의 품계를 지닌 중인 조리 기술자들이다. 이들을 숙수라고도 불렀다.

대식가는 재부다. 요샛말로 총주방장인 셈이다. 대전과 왕비전의 수라간이 그의 일터다.

그가 매일 하는 고민은 왕에게 어떤 음식을 올릴까 하는 것! 오늘 만나는 동료

호식가(好食家)의 집에서 고민이 한 방에 해결될지도 모른다. 숙수들의 연구모임이라고나 할까!

청계천 근처 호식가의 집이 멀리 보인다. 고관대작들은 가회동 등 북촌에 살고,

가난한 선비들은 남산 회현동 등 남촌에 살았다. 그 중간쯤인 청계천 일대에

역관, 의관, 화원, 계사(관에서 주로 회계를 맡은 이들) 등의 중인들이 거주했다.

 

 

 

 

 

 

'어허, 조금만 가면 되겠구먼. 다들 먹어치우는 건 아닌가!' 애가 탔다. 대식가가 호식가의 집에 도착하자

솔솔 풍기는 맛깔스러운 냄새에 위장이 출렁거린다. 장안에 내로라하는 숙수들이 모였다.

"자네, 상다리가 부러지겠군." 타박하는 말로 인사말을 대신하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부른다.

"지난번 숙수 박이미가 전하에게 올린 동아찜도 있구먼. 숙수 박이돌이 올린 토란떡까지 차렸네그려."

동아찜은 동아(동과. 오이과식물)에 꿩, 닭, 돼지고기, 붕어찜을 채워 넣은 건강식이다.

"여보게,목미외병(메밀빵)부터 맛을 보게나. 자네는 이게 무슨 맛일 거 같나? 메밀을 곱게 가루내서 물에 반죽해

동글동글 빚었네." 호식가의 설명에 대식가가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갸우뚱거리다가 되묻는다.

"잘 빚어지던가?" "물에 젖은 한지에 쌌지. 불씨가 남은 재 속에 넣어 익혔다네." 대식가 앞에는 누런 똥색의 음식이 있다.

그가 꿀에 찍어 한입 베어 물고 입을 다문다. 그러고는 "으흠" 외마디를 지른다. 소감을 내뱉는다. "좋네, 좋아."

옆자리에 앉은 채식가(菜食家)가 못마땅해 한소리한다. "참, 자네는 앉자마자 탐하는구먼, 인사도 없나!"

대식가는 그러거나 말거나 눈에 확 들어오는 것에 손을 뻗는다. 갑자기 형형색색 눈빛을 밝힌다.

"옳거니, 이게 바로 계단탕이란 건가?" 호식가가 웃는다. "맞네. 자네는 역시 감이 최고야.

지난번 연경(지금의 베이징)에 연행사로 다녀온 분이 맛보고 알려줬다네. 연하고 담백하다 했네.

연경 사람들은 돼지기름을 잘 쓰지. 철 냄비에 돼지기름 넣고 날계란 깨서 지진 거라네."

지금의 달걀프라이와 비슷해 보인다. 입안에 휘감아 던져 넣고는 대식가는 또 외마디를 지른다.

무릎을 탁 친다. "요 맛이구먼." 앉자마자 먹어대는 대식가의 행태에 채식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임진왜란 후에 최고로 뜬 직업은 역관이다. 일본과 청나라를 오가는 조선통신사나 연행사 일행에는 역관이 동행했다.

역관들은 최고 인기 상품인 인삼 등을 가져가 팔고 진기한 물건을 들여왔다. 수익이 컸다.

 양반네들 부럽지 않을 정도로 재산을 모은 이도 많았다. 사노비를 둘 정도였다고 한다.

역관들은 중국에서 맛본 진기한 음식도 소개했다. 부를 쌓은 중인계급은 역관만이 아니었다. 의관들도 있었다.

전국에서 한양으로 모이는 약재의 독점권을 가진 의관들은 부자가 됐다. 재력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했다.

고관대작의 상다리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음식을 즐겼다고 한다.

대식가의 집요한 탐식은 이어졌다. "계단탕은 부드럽기가 이를 데가 없구먼.분탕이 생각나."

분탕은 녹두녹말로 만든 면과 육수를 합친 뒤에 반숙한 달걀을 얹은 음식이다.

'분'(粉)은 밀가루 이외의 작물가루를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귀한 밀가루 대신 메밀이나 녹말의 가루를 국수 재료로 많이 썼다.

"요즘 궁에는 별일 없나?" 호식가가 묻자 모인 이들의 시선이 모두 대식가에게 몰린다.

대식가는 숙수 세계에서 정보통이다. "내 자네들에게 이야기 하나 해줌세.

 도제조판부사 이상국 대감의 아들을 아나? 그분이 예전에 병이 나 침을 맞았는데도

차도가 없었네. 근데 우분(연근)죽을 먹고 차도가 있었다는구먼." 어허, 숙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를 재촉한다. "옥체가 허하신 전하(경종)께도 올리려고 했다는구먼.

전하는 입이 깔깔하셔서 몇 해 동안 못 자셨지. 오줌에 피가 나는 병도 얻으셨다네.

도제조판부사 대감이 역관 김수장에게 명령해서 요동에서 우분을 구해왔지.

대감 아드님이 올리려다가 전하가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으셔서 관뒀다네."

호식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많이 단가?" 묻는다.

"곱게 간 우분에 엿 가루를 섞어 물 부어 죽 쑨 거니 달 수밖에."

대식가는 업계 이야기를 쭉 풀어낸다. "사옹고(사옹원에 소속된 그릇 보관소)에 일하는 성상

(사옹고 기물 관리하는 노비) 권탑석이 용한 재주가 있더이다. 지난번 황자계혼돈을 만들어 왔어.

그 맛이 좋더라. 숙수 둘이 배워 얻었지." 황자계혼돈은 암탉 두 마리와 꿩 한 마리를 삶은 국물에

만두를 넣어 만든 음식이다. 만둣국인 셈이다.

궁금한 것은 못 참는 대식가가 묻는다. "자네 두부피 아나?" 호식가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자랑스럽게 말한다.

"자네는 못 만들 거네. (하하) 두부를 솥에 넣어 끓여. 껍질에 주름이 생기면 꽂이로 문질러 얇은 껍질만 얻는다네.

음지에서 말렸다가 탕 만들 때 쓰지." 대식가가 "에끼, 이 사람 왜 나를 놀리는가?"

 

 

 

 


 

숙수들의 재미난 이야기 잔치는 술시(戌時. 밤 7~9시)를 넘어간다.

숙수들은 앞에 놓인 팥물밥을 숟가락으로 뜬다.

"유반(遊飯. 놀러 가서 먹는 밥)으로 팥물밥이 좋아." 호식가의 말에

대식가가 기분을 풀고 맞장구를 친다.

"생선식해나 육포나 생선 말린 것에 밥을 담아 눌러 가져가면 좋지." 호식가가 대꾸했다.

"잘난 체는 여전하구먼.(하하)""채식가 자네, 선왕(숙종)께서 드신 '생선숙편' 생각나나?"

"생각나고말고. 생선살을 탁탁 으깨서 녹말, 참기름, 간장을 넣고 차지게 틀에 넣고 쪄낸 거 아닌가!"

요즘 사람들이 보면 '앗! 어묵이네'라고 소리를 지를 음식이다.

봄날 밤은 먹을거리 이야기로 깊어만 간다.



한겨레신문사,/출처 <현대식으로 다시 보는 수문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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