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치는 베도라치의 치어이다. 베도라치는 바닷물이 얕은 연안에 사는 물고기이다.
한반도의 바다에 흔히 있으며, 바위 틈이나 해초에 숨어 지낸다. 낚시에 곧잘 잡히는데,
등지느러미에 잔 가시가 돋아 있어 이를 잡다가 손을 다치는 일이 많다.
10~20센티미터짜리가 보통이고 큰 것은 30센티미터에 이르기도 한다.
겨울에 들면 베도라치는 해초에 알을 낳아 붙인다.
이 알이 부화하여 치어가 바닷물에 떠돌 때 그물로 잡는데, 이 베도라치의 치어를 실치라 한다.
실치 잡이는 충남 당진, 보령, 태안 등의 앞바다에서 주로 하며,
특히 당진의 장고항이 이 실치로 유명하다. 봄이면 실치 축제를 열기도 한다.
그물에서 막 거둔 살아 있는 실치이다.
살이 투명하다. 작지만, 씹으면 감칠맛이 확 돈다.
실치를 흔히 뱅어라고 잘못 알고 있다. 뱅어라는 물고기는 따로 있다.
베도라치는 농어목에 들고 뱅어는 바다빙어목에 드니 분류학상으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베도라치의 치어가 뱅어라는 이름으로 잘못 알려지게 된 것은 뱅어가 한반도에서 거의 사라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캐스트는 베도라치의 치어인 실치에 관한 것이지만, 이 뱅어에 대한 이야기를 좀 길게 하여야 할 듯싶다.
이 두 생선이 얽히게 된 내력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뱅어는 살이 투명한 생선이다.
그래서 한자로 白魚(백어)라 썼고, 이 백어가 뱅어로 변한 것이다. 뱅어는 다 자라봤자 10센티미터에 이른다.
다 자라도 살은 여전히 투명하다. 바다와 접하는 하구에 주로 산다. 봄에 알을 낳는데,
그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강으로 올라간다. 고문헌에 이 뱅어에 대한 기록이 많다.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에도 뱅어의 여러 산지가 기록되어 있다.
한반도의 강에서 이 뱅어가 많이 잡혔다는 뜻인데, 한강, 금강, 낙동강, 압록강, 대동강, 영산강 등등에서 뱅어가 났다.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얼음이 언 때 한강에서 잡은 것이 가장 좋다.
임한(林韓)ㆍ임피(臨陂) 지방에서는 1~2월에 잡는데 국수처럼 희고 가늘어 맛이 매우 좋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1956년 1월 18일자 동아일보에 이런 기사가 올라 있다.
어름의 한강은 요즘 밤마다 어름을 뚫어놓고 고기를 낚는 태공망들의 어화로서 뒤덮여 철 아닌
풍교야박을 연상. 왕상의 빙리로 좋읍니다마는 그보다는 요즘 이곳 특산인 백어회가 구미를 당기고 있읍니다.
그런데, 이 흔하였던 뱅어가 갑자기 사라졌다.
1960년대 신문에 공해로 인해 뱅어가 전멸하고 있다는 기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산업화가 가져온 강의 오염이 뱅어를 다 죽였을 것이다.
뱅어는 회로도 먹었지만 말린 포로도 먹었다. 한 마리씩 배를 가르고 말렸다.
일본의 강에는 아직 뱅어가 제법 잡히는지 일본의 여러 웹사이트에서 뱅어초밥과 뱅어포의 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는, 강의 오염으로 뱅어가 사라지자 그 대체물로 베도라치의 치어가 누군가의 눈에 띄었을 것이다.
당진 장고항 사람들은 1960년대 말부터 실치 잡이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당시부터 뱅어라 하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더불어, 뱅어를 두고 실치라고 하였는지도 확인할 길이 없다.
1970년대 초 장고항에서 실치 잡이가 본격화할 때에 다들 실치포를 말렸다는 증언으로 짐작하건대,
뱅어포 생산 또는 유통업자가 뱅어를 구하지 못하자 그 대용품으로 실치포를 '기획'하였고,
이미 뱅어포라는 이름이 널리 쓰이고 있으니 그 이름을 굳이 바로잡지 않아 지금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뱅어라는 물고기가 따로 있고, 또 지금은 사라졌지만 한반도 음식문화에서 꽤 중요한 위치에 있는 생선이므로
베도라치 치어를 뱅어라 부르는 것은 바른 일이 아니다. 실치가 뱅어의 다른 이름으로 쓰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사투리로 취급할 수 있으므로 베도라치의 치어를 실치라 부르는 것은 적절한 일이다.
그물에서 거두었을 때 실치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여러 색이 난다.
왼쪽에 있는 약간 큼직한 두 마리의 치어는 갈치 새끼인 것으로 보인다.
낭장망의 그물을 당기고 있다.
실치가 잘 안 나올 때는 하루에 한 번, 많이 나올 때는 수시로 그물을 턴다.
실치는 낭장망(정치망이라고도 한다)으로 잡는다.
긴 자루 모양의 그물인데, 그물의 입구는 양쪽으로 기둥을 세워 수면 위로 약간 떠 있게 고정을 하고,
물고기가 들어와 모이는 그물의 한쪽 끝은 바닷물 속에 내려져 있는 구조이다.
낭장망은 물살이 센 바다에 맞는 어구이다. 서해와 남해의 연안에서 흔히 쓴다.
낭장망의 그물은 썰물과 밀물에 따라 그 입구의 방향이 뒤집어지는데, 어느 물때에 실치가 더 많이 잡히는 것은 아니다.
실치가 적게 나올 때는 하루에 한 번 정도 그물을 올리고, 많이 날 때는 수시로 그물을 털어 실치를 거둔다.
3~4월에 잡는 작은 실치는 연하여 회로 먹는다. 회로 팔다 남은 것이 있으면 실치포로 만든다.
멸치처럼 데쳐서 말리는 것이다. 5월에 들면 실치의 뼈가 억세어져 회로는 먹을 수가 없고 전부 실치포로 만든다.
실치회는 겨우 한 달 정도 아주 잠시 맛볼 수 있는 음식인 것이다.
글·사진/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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