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대륙 아프리카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광활한 대자연 이나 '투자 가치 있는 신흥 경제대국'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빈곤·질병 그리고 차별·소외가 있습니다.
2013년 4월 2일, 취재팀은 에티오피아에 입국해 딜라까지 장장 8시간을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우리가 묵게 될 곳은 딜라 한별학교 안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와 사택.
한별학교 측에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 외부 호텔에서 먹고 자며 취재를 진행하려고 했지만
정순자 교장의 권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여긴 식당도 호텔이라고 불러요. 호텔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물도 잘 나오지 않고요.
무엇보다도 벼룩이 많아서 잠자기 어려우실 거예요. 벼룩은 어디에나 있지만 호텔은 더 많고요.
전기도 잘 들어오지 않고, 식사도 현지식이라 힘드실 테니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세요.
밖에서 주무시게 하면 제가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아요. 기자님은 저희 집에서 주무시고
남자 분들은 학교 안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시면 돼요."
취재진 일행이 한별학교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8시께. 학교가 가까워질수록 불빛도 사람도 사라지고
오직 자동차 전조등에 의지해 길을 달려야 했다. 가로등도, 신호등도, 심지어 가옥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조차 없는 밤(전기수급이 원활하지 못한 에티오피아에서 오후 8시는 대부분 잠자리에 든 한밤중이다),
드디어 한별학교 교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무 사고없이 도착한 것에 감사했다.
"어서 오세요. 멀리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교장선생님도 잘 다녀오셨죠?"
태양열 랜턴으로 어둠을 밝히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한별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한국인 선생님 세 분과 집안일을 돌보는 두 사람의 에티오피아 아가씨였다.
긴 여정으로 인해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안내에 따라 각자 방에 짐을 풀고 잠깐의 휴식을 취한 뒤
다시 거실에 모였다. 다음 일정에 대한 확인과 준비를 위한 회의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거실 한쪽에서 에티오피아 아가씨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이 저녁에 무엇을 하는가 물었더니 손님을 환영하는 의미로
에티오피아식 환영행사 '분나마프라트'를 준비하는 것이란다.
말로만 듣던 분나마프라트를 이렇게 빨리 경험하게 되다니…. 흥분한 일행들은 회의는 미뤄두고
카메라를 꺼내 세리머니를 준비하는 두 아가씨들의 모습을 담기에 바빴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라고 부르지 않고 분나라고 해요. 분나마프라트, 영어로는 커피 세리머니라고 부르죠.
오지 주전자에 한약처럼 푹푹 끓인 에티오피아식 커피 드셔 보셨나요? 아마 한국에서 드시던 커피랑은
전혀 다른 맛일 거예요. 한번 즐겨보세요."
분나마프라트는 화려한 색으로 시작했다.
갓 따온 푸르고 싱싱한 나뭇잎과 크고 붉은 꽃으로 장식한 동그란 꽃방석 위에
흰 레이스 커버를 얌전히 덮은 앉은뱅이 찻상이 놓여 있다.
꽃방석 중심에는 꽃받침 모양의 작은 향로가 있고 그 옆 숯불을 담은 화로 위에는
목이 긴 토기 주전자 '제베나'를 올려놨다. 무엇에 쓰이는지 모르겠지만,
깨끗한 물을 담아놓은 플라스틱 그릇도 보인다.
분나마프라트의 주인공인 에티오피아 아가씨 아디스와가 손님들이 꽃방석 주변에 둘러앉는 것을 보며
향로에 숯덩이와 함께 노란색 송진덩어리를 올려놓으니 흰 연기와 함께 진한 향내가 실내를 가득 채운다.
세리머니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차를 마시기 전 향을 피우는 풍습은 중국이나 한국·일본에도 있기에
그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향으로 주변의 잡냄새를 없애 차 본연의 향과 맛에 집중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 그 하나이며, 연기를 피워 올리는 것으로 행사의 품위를 높이고
손님에게 극진한 존경과 예의를 표하기 위한 것이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
송진과 나무껍질 그리고 알 수 없는 묘한 것들이 어울려 타들어 가며 뿜어지는 흰 연기가
찻상 주변으로 둘러앉은 우리를 포근하게 감쌌다. 긴 시간 비행에서 오는 피곤함 때문인지
진한 향냄새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환각에 빠진 듯 잠시 정신이 몽롱해졌다.
예사롭지 않은 커피향
전통방식으로 빵을 쪘어요. 손님 중 가장 나이 많으신 분이 잘라주세요."
뜨베가 빵을 덮었던 보자기를 열고 칼을 건넨다. 누렇게 쪄낸 빵에서는 구수하고 달큼하며 시큼한 냄새가 난다.
밀가루와 옥수수가루에 효모를 넣어 발효시킨 후 찜통에 쪄낸 자연 발효빵. 우리에게도 익숙한 빵이다.
빵 위에 써진 '웰컴'이라는 글자에 눈길이 간다. 손님을 위한 소녀들의 깨알 같은 정성이다.
손님들이 빵을 자르고 떼어 먹는 동안 아디스와는 제베나에 물이 끓는 것을 확인하고 커피 가루를 넣었다.
끓고 있는 물에 가루를 넣으면 거품과 함께 끓어 넘칠 것 같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약탕기를 연상시키는 두꺼운 토기 주전자 제베나에 그들만의 과학이 숨겨져 있는 모양이었다.
제베나가 가진 또 다른 과학은 비등점이다. 대부분의 지역이 해발 2000미터 이상인
에티오피아는 높은 고도 때문에 비등점이 낮아 95도씨 정도면 물이 끓는다.
하지만 두껍고 목이 긴 제배나의 경우 기압 차이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어 진하고 깊은 커피를 우려내는 데 효과적이다.
커피가 우러나면서 송진향을 압도하는 진한 커피 향이 집안에 가득하다.
커피 아로마의 손실을 최대한 막기 위해 제베나의 주둥이를 좁고 길게 만들고 뚜껑까지 덮었지만,
끓고 있는 커피의 향이 워낙 강하다 보니 밖으로 퍼지는 향도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커피는 에티오피아인들의 자부심이에요. 에티오피아가 커피의 기원이라는 것은 큰 자랑이죠.
하지만 수천 년 마셔온 커피를 요즘엔 잘 마시지 못해요. 커피 가격이 많이 올랐거든요.
물론 집집마다 커피나무를 키우고 지천에 커피나무가 있지만, 마시기보다는 내다 팔기 바쁘죠.
그나마 돈이 되는 게 커피밖에 없으니까요."
2000년 넘게 커피를 마셔온 에티오피아인들은 대부분 조상 때부터 커피에 중독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커피를 즐기며 커피를 뺀 에티오피아인들의 삶은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다.
역사학자들은 커피(아라비카종)의 기원을 AD 500년께 에티오피아로 보고 있다.
커피의 기원으로는 '칼디설'이 가장 유력하다. A.D. 500년께 에티오피아에 사는 칼디(Kaldi)라는
양치기 소년이 커피를 처음 발견했다는 설이다. 아비시니아고원에서 양을 치던 소년 칼디가
어느 날 갑자기 흥분해서 날뛰는 염소를 보고 그 이유를 알아봤더니
고원 주변에 자란 나무의 빨간 열매를 먹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염소가 먹은 붉은 열매를 따 먹은 칼디도 기분이 상쾌해지고 몸을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 뒤
마을에 있는 수도승에게 커피를 전했다. 커피맛을 본 수도승은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물론
잠을 이겨내는 효과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뒤로 커피는 기분을 좋아지게 하고
잠을 극복하게 해주는 신비의 열매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신비한 열매 커피는 카라반의 행렬을 따라 아랍 세계에 전달되고 십자군 전쟁 과정에서 유럽까지 알려지게 된다.
매력적인 음료인 커피는 오래지 않아 차를 즐기는 유럽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커피 붐을 못마땅하게 여긴 일부 로마 가톨릭교회가 커피에 '악마의 음료'라는 누명(?)을 씌워
금지해줄 것을 탄원했지만, 교황청은 오히려 향기로운 맛과 향에 감탄하며 커피에 세례를 내렸다고 한다.
커피는 현대에 와서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음료가 됐다.
세계는 매년 총 700만 톤의 커피를 생산하고 4000억 잔을 마실 만큼 커피에 의존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원두 거래 역시 활발해 석유에 이어 전 세계 무역거래량 2위를 차지하고 있다.
1500년 전 에티오피아 목동이 발견한 작은 콩이 세계를 정복한 것이다.
에티오피아인들에게는 두 가지 큰 자부심이 있다. 그 하나가 커피이며 다른 하나는 최초의 인류인
호모사피엔스(이달투·Idaltu)와 최초의 직립 보행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루시·Lucy)의
화석이 발견된 인류의 기원지라는 것이다. 분나마프라트를 선보인 에티오피아 아가씨
뜨베와 아디스와 얼굴에서 빛나는 자부심이 느껴졌던 데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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