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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날의 동지팥죽 이야기

교육에 관한 것/교육 지침서

by 그린체 2013. 12. 22.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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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글자 그대로 겨울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태양이 가장 남쪽으로 기울어져

밤의 길이가 일 년 중 가장 긴 날이다. 이 날이 지나면 하루 낮길이가 1분씩 길어지는데

옛 사람들은 태양이 기운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동지를 설날로 삼기도 했었다.

동짓날에는 팥죽을 쑤어 먹는다.
동지 팥죽은 먼저 사당에 올리고 여러 그릇에 나누어 퍼서 장독, 곳간, 헛간, 방 등에 놓아 둔다.

그리고 대문과 벽, 곳간 등에 뿌리기도 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팥죽의 붉은 색이

잡귀를 몰아내는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동지 팥죽은 잔병을 없애고 건강해지며 액을 면할수 있다고 전해져 이웃간에 서로 나누어 먹었다.


동지 때는 '동지한파'라는 강추위가 오는데 이 추위가 닥치기 전 보리밟기를 한다.

이때는 땅속의 물기가 얼어 부피가 커지면서 지면을 밀어 올리는 서릿발로 인해 보리 뿌리가 떠오르는 것을 막고

보리의 웃자람을 방지하기 위해 과거엔 겨울 방학을 앞두고 학생들을 동원해 대대적인 보리밟기를 하기도 했다.

동짓날 한겨울 기나긴 밤에는 새해를 대비해 복조리와 복주머니를 만들었다.
복조리는 산죽을 쪄와 사등분으로 쪼개어 햇볕에 말리고 물에 담근 뒤 그늘에서 건조시켜 만든다.

쌀에 든 돌이나 이물질을 가려낼 때 사용하는 복조리는 새해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복을 사라며

"복 조리 사려"를 외치며 다녔다. 대보름이 지난 뒤 팔러 다니면 상놈이라 욕을 먹기도 했다.

복조리를 부엌 부뚜막이나 벽면에 걸어두고 한해의 복이 그득 들어오기를 기원했다.

 

 

 

 


동지는 24절기 가운데 하나로 대설(大雪)과 소한(小寒) 사이에 있다.

북반구에서 태양의 남중고도가 가장 낮아 1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이다.
동지에 팥죽을 먹는 유래는 6세기 초(楚)나라의 일 년간의 연중행사를 기록한 형초세시기에 나와 있다.

공공씨의 망나니 같은 아들이 동짓날 죽어서 역질귀신이 됐다. 이 역귀는 생전에 팥을 싫어했기 때문에

동짓날이 되면 팥으로 죽을 쑤어 역귀를 쫓기 시작했다고 전해졌다.
또 붉은 빛은 양기를 의미하기 때문에 팥이 귀신을 쫓는 역할을 한다 하여

그 후로 잡귀를 물리치는 데 널리 사용됐다. 특히 동지팥죽에는 찹쌀로 만든 새알심이 들어있는데,

예부터 먹는 사람의 나이만큼 새알심을 팥죽에 넣어 먹는다고 알려졌다.

 

 
동지(冬至)는 태양이 적도 이남 23.5도의 동지선(남회귀선) 곧 황경(黃經) 270도의 위치에 있을 때이다.

그래서 양력 12월 22일이나 23일 무렵에 든다. 양력으로 동지가 음력 동짓달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中冬至), 그믐 무렵에 들면 노동지(老冬至)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태양력인 동지에다가 태음력을 잇대어 태음태양력으로

세시풍속을 형성시켜 의미를 부여하였다.

민간에서는 동지를 흔히 아세(亞歲) 또는 작은설이라 하였다. 태양의 부활이라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설 다음가는 작은설로 대접 하는 것이다. 이 관념은 오늘날에도 여전해서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라는 말처럼 동지첨치(冬至添齒)의 풍속으로 전하고 있다.

또 동지는 날씨가 춥고 밤이 길어 호랑이가 교미한다고 하여 ‘호랑이장가가는날’이라고도 부른다.


중국 주나라에서는 이날 생명력과 광명이 부활한다고 생각하여 동지를 설로 삼았다.

당나라 역법서(曆法書)인 선명력(宣明曆)에도 동지를 역(曆)의 시작으로 보았다.

『역경(易經)』에도 복괘(復卦)에 해당하는 11월을 자월(子月)이라 해서 동짓달을 일년의 시작으로 삼았다.

동지와 부활이 같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신라에 이어 고려시대에도 당(唐)의 선명력을 그대로 썼으며, 충선왕 원년(1309)에 와서

원(元)의 수시력(授時曆)으로 바뀔 때까지 선명력을 사용하였다.

이로 보아 충선왕 이전까지는 동지를 설로 지낸 것으로 짐작된다.


한편 구미(歐美) 각국의 성탄절(크리스마스)도 초기 기독교가 페르시아의 미트라교(Mithraism)의

동지 축제일이나 태양 숭배의 풍속을 이용해서 예수 탄생을 기념하게 한 것이다.

신약성서에도 예수의 탄생 날짜 기록은 없다. 농경민족인 로마인의 농업신인 새턴(Saturn)의 새턴네리아 축제가

12월 21일부터 31일까지 성했고, 그 중 25일이 특히 동지 뒤 태양 부활일로 기념된 날이었다.

 

 

 

동지팥죽
동지에는 동지팥죽을 먹는다. 팥을 고아 죽을 만들고 여기에 찹쌀로 단자를 만들어 넣어 끓이는데,

단자는 새알만한 크기로 하기 때문에 새알심이라 부른다.
팥죽을 다 만들면 먼저 사당에 올려 동지고사(冬至告祀)를 지내고, 각 방과 장독, 헛간 같은 집안의

여러 곳에 놓아두었다가 식은 다음에 식구들이 모여서 먹는다. 사당에 놓는 것은 천신의 뜻이고

집안 곳곳에 놓는 것은 축귀의 뜻이어서 이로써 집안에 있는 악귀를 모조리 쫓아낸다고 믿었다.

이것은 팥의 붉은색이 양색(陽色)이므로 음귀를 쫓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붉은 팥은 옛날부터 벽사(辟邪)의 힘이 있는 것으로 믿어 모든 잡귀를 쫓는 데 사용되었다.

『동국세시기』에는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에게 바보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동짓날에 죽어서 역질 귀신이 되어 붉은 팥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동짓날 붉은 팥죽을 쑤어서

그를 물리친다.”라고 적혀 있다.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사람이 드나드는 대문이나 문 근처의 벽에 뿌리는 것 역시 악귀를 쫓는 주술 행위의 일종이다.

그러나 동짓날이라도 동지가 음력 11월 10일 안에 들면 애동지라 하여 아이들에게 나쁘다고 해서 팥죽을 쑤지 않는다.

또 그 집안에 괴질로 죽은 사람이 있어도 팥죽을 쑤어먹지 않는다고 한다.

경기도에서는 사당에 팥죽으로 차례를 지낸 다음 방, 마루, 장광 등에 한 그릇씩 놓고 식구들이 둘러앉아 먹는다.

경상도에서는 동지에 팥죽을 쑤어 솔가지에 적셔 집안 대문을 비롯하여 담벼락이나 마당에도 뿌리며

마을 입구에 큰 고목에도 뿌려 잡귀들의 동네 침입을 막는다.

강원도에서는 팥죽의 새알심으로 찹쌀이나 수수쌀로 만든 ‘옹심’을 넣어 나이 수대로 먹는다.

일꾼들은 이날 팥죽 아홉 그릇을 먹고 나무 아홉 짐을 져야 한다고 한다.

날씨가 더워서 팥죽이 쉬면 이듬해 농사가 풍년이라고 여긴다.

충남 연기에서는 동짓날 동지불공(冬至佛供)을 드리러 절에 다녀오며, 집에서 팥죽을 쑤어먹는다고 한다.

또 애기동지에는 팥시루떡을 해먹고 노동지에는 팥죽을 쑤어먹는다.

그리고 중동지는 떡이나 팥죽 중 하나를 해서 먹는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하며,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喪家)에 보내는 관습이 있다. 이것은 상가에서 악귀를 쫓기 위한 것이다.

팥죽은 동지에만 쑤어먹는 것이 아니고 이웃이 상(喪)을 당하였을 때 쑤어 부조하기도 한다.

우리 조상들은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나 재앙이 있을 때에는 팥죽, 팥밥, 팥떡을 해서 먹는 풍습이 있었다.

요즈음도 이러한 풍습이 이어져 고사를 지낼 때에는 팥떡을 해서 고사를 지내고 있다.

고사의 목적은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이 번성하기를 기원하고, 공사를 하는 사람은 공사가 아무런 사고 없이

완공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이처럼 팥이 들어가는 음식은 소원을 이루어준다고 믿었지만,

그 사실 여부를 떠나 팥이 지닌 여러 가지 효능으로 보아 건강식품임에는 틀림없다.

 

팥은 피부가 붉게 붓고 열이 나고 쑤시고 아픈 단독에 특효가 있으며,

젖을 잘 나오게 하고 설사, 해열, 유종, 각기, 종기, 임질, 산전산후통, 수종,

진통에도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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