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은 밥과 반찬, 그리고 국으로 이루어져 있다. 밥을 맛있게 먹기 위한 구성이다.
이 밥에 반찬을 더해 비비면 비빔밥이고, 국을 말면 국밥이다.
반찬과 국을 따로 차릴 필요 없이 한 그릇의 밥을 간단히 먹을 수 있게 조리한 것이 비빔밥이고 국밥인 것이다.
비빔밥이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1890년대에 나온 [시의전서]가 처음이다. 그 전의 문헌에 없다 하여도
비빔밥은 밥과 적당한 반찬만 있으면 조리할 수 있는 음식이니 오래 전부터 흔히 먹었을 것이다.
밥과 반찬이라는 한민족의 밥상 구성이 이루어진 시기를 고려시대 중기로 추정하고 있으므로
비빔밥의 탄생도 그 즈음에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돌솥비빔밥은 1960년대에 전주의 한 비빔밥집에서 탄생한 것이다.
돌솥 바닥에서 나는 타닥거리는 소리와 비비면서 올라오는 고소한 냄새 덕에 그냥의 비빔밥보다 인기가 있다.
비빔밥 유래에 대한 설은 다양하다.
첫째 궁중음식설. 조선시대 왕이 점심에 먹는 가벼운 식사로 비빔이란 것이 있는데, 그 비빔이 비빔밥의 유래라는 것이다.
둘째 임금몽진음식설. 나라에 난리가 일어나 왕이 피란을 하였는데, 왕에게 올릴 만한 음식이 없어
밥에 몇 가지 나물을 비벼 낸 것에서 유래하였다는 것이다. 셋째 농번기 음식설. 농번기에는 다들 바빠 구색을 갖춘
상차림을 준비하기 어려우니 그릇 하나에 여러 음식을 섞어 먹게 되었다는 설이다.
넷째 동학혁명설. 동학군이 그릇이 충분하지 않아 그릇 하나에 이것저것 비벼 먹은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다섯째 음복설. 제사를 마치고 나서 상에 놓인 음식으로 비벼 먹은 것에서 비롯하였다는 설이다.
여섯째 묵은 음식 처리설. 섣달 그믐날에 묵은 해의 음식을 없애기 위하여 묵나물에 밥을 비벼 먹은 것에서부터
비빔밥이 유래하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비빔밥 유래에 대한 설이 많은 것은 어느 설이건 그 근거가 희박하다는 뜻이다.
밥과 반찬이 있으면 자연스레 비벼서도 먹게 되어 있으니 어디에서 유래하였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리한 일이다.
한민족이 밥을 지어 먹었을 때부터 비빔밥은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전주비빔밥은 전주 사람들의 가정에서 먹는 비빔밥이 아니다. 전주에 있는 외식업체의 비빔밥이다.
한반도에서의 근대 음식점 발달 역사로 보아 1800년대 말에 한양과 평양 등의 식당에서 처음 비빔밥이 팔렸을 것이다.
1929년 [별건곤]이란 잡지에 진주비빔밥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전주에서도 그 즈음에 비빔밥을 내는 식당이 있었을 것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영하 교수의 전주 현지조사에 의하면 1930년대 남문시장 일대 간이식당에서 비빔밥을 판매했었다고 한다.
전주비빔밥의 명성은 해방 직후 개업한 것으로 알려진 옹팡집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행정관료, 정치인, 문인 등 유명인사들이 들락거리면서 옹팡집은 전국적인 '맛집'으로 이름이 났었다.
옹팡집에 대한 옛 기사를 보면 비빔밥이라면서도 조기찌개, 전어구이 등 여러 반찬들이 따라 나오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전주에는 10여 가지가 넘는 음식을 내는 한정식집이 많은데, 옹팡집도 그런 식당 중의 하나일 것이며,
밥을 흰밥이 아닌 비빔밥으로 내면서 비빔밥집이란 이름을 얻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정식에 비빔밥이 결합한 이 식단 구성은 요즘도 전주비빔밥집에서 면면히 이어오고 있는데,
차려진 상에서 비빔밥을 빼고 흰밥을 대신 놓아도 훌륭한 상차림이 된다. 현재 전주의 비빔밥 식당 중 가장 오래된 곳은 한국집이다.
1952년 떡집으로 시작하여 1953년부터 비빔밥을 내었다. 한국집의 주순옥 씨(82세)는 개업 당시의 남문시장 좌판에서
파는 비빔밥은 나물에 날달걀을 넣고 비비는 것이었는데, 한국집에서는 이를 좀더 고급화하였다고 한다.
제법 '품격'을 갖춘 전주비빔밥이다. 청적황백흑의 오방색을 맞추었다. 오방색은 우주를 나타내는 색이다.
비빔밥은 먹기 전에 비벼야 한다. 비벼 놓으면 양념에 의해 밥이 '삭는다'. 비비면 오방색은 혼돈의 색이 된다
전주비빔밥의 명성이 전국화한 것은 1970년대이다.
서울의 백화점이 향토물산전 등을 열면서 지역음식 판매장을 열었는데, 여기에 전주비빔밥이 끼였다.
처음엔 간이음식점이었다가 인기가 있자 전주의 음식점 주인을 불러들여 고정 매장을 열었다.
서울에서 인기가 있자 전주에서도 비빔밥 전문점을 표방한 식당이 여기저기 개업을 하였다.
1980년에는 명동에 단독 매장의 전주비빔밥 전문점도 섰다.
1981년 여의도에서 열린 국풍81 행사에 전국의 유명 향토음식이 다 모였는데, 여기에도 전주비빔밥이 올라왔다.
이 즈음에 전주 하면 비빔밥을 연상하게 될 정도로 전주비빔밥은 향토음식으로서의 유명성을 확고히하게 되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면서 한국인은 자신의 문화에 대해 큰 자긍심을 갖게 되는데,
그 중에 비빔밥이 한국음식문화의 한 상징으로 부각되었다. 밥 위에 올리는 나물의 색은 오방색을 하고 있어
한국적 우주관을 지니고 있으며 영양학적으로 매우 우수한 음식이라고 홍보되었다.
1996년 마이클 잭슨이 한국에 공연을 와서 비빔밥을 즐겨 먹는다는 사실을 알려
비빔밥에 대한 민족적 자부심을 극단으로 부추겼다.
비빔밥은 한국인만 맛있어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도 맛있어할 것이란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을 넘어,
외국인도 맛있어해야 한다는 강박까지 가지게 되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정부가 추진하는
한식 세계화 정책과 관련하여 비빔밥이 주요 음식으로 거론되는 것도 이런 흐름 안에 있는 것이다.
한국 비빔밥의 중심에는 전주비빔밥이 있으니 전주에서도 한식 세계화와 관련하여 비빔밥 축제 등
여러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전주 사람들에게 전주비빔밥은 인기가 있는 편이 아니다.
외지에서 친인척이나 지인이 오면 마지못해 가서 먹는 음식일 뿐이다. 관광음식으로서의
가치에만 집중하였지 현지인의 일상음식으로서의 비빔밥에 대한 가치에는 소홀하였기 때문이다.
글·사진/ 황교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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